언론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6-21 11:03 조회5,34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이천농 씨에게
'기독신보' 보셨겠지요. 12월 19일 경성지방 교역자회에서 이용도는 이세벨의 무리 중 하나라는 기사를 증거로 조사위원 3인 신공숙, 김창준, 이규갑 씨 등이 1시부터 8시까지 상의하였고 내가 증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 홍OOO, 김O변, 원O상 제씨(諸氏)도 참석. 그 다음날 나는 사임원을 감리사님에게 드리었더니 불(不)수리되어 그냥 왔소이다. 퇴회(退會)는 멀지 않은 일일 것 같소이다.
내지(內地)에는 대소란! 조사, 책벌, 공회결의 등 교계에는 풍운불식(風雲不息)!
화자(花子) 일은 하여간 이화여전에 입학시켜 놓고 나 서울 있는 동안에 집에서 숙식하지 그 외에 별도리가 없어요. 내가 어디서 교섭해 볼 데조차 다 끊어졌으니깐. 사방에서 핍박과 멸시가 조수같이 밀려들어와 나는 거리를 걸을 용기조차 잃는 때가 있구려, 마음이 민망한 때도 있고. 그래도 주님 도우심으로 이겨 나갑니다. 쓸 말이 없는 것 같구려.
12월 30일
이용도는 간도에 있는 동지 이호빈도 <기독신보>를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 편지로부터 약 1개월 전인 11월 28일 평양임시노회가 열렸고, <기독신보>는 이것을 2번이나 재탕했다. 먼저 12월 7일자 기사다.
1932년 12월 7일 (제17권 제50호/제888호)
평양임시노회촬요(平壤臨時老會撮要)
이용도 목사의 소개로 평양에 와서 자칭 하느님의 묵시를 받았노라고 하며 자칭 천사라 하여 분별력이 부족한 교인을 모아놓고 허무맹랑한 짓을 감행한 원산 한준명의 일로 소집된 평양임시노회는 11월 28일 오후 1시 평양 서문밖 예배당에 모여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① 이런 일은 부지중 각 교회에 만연되는 상태에 있으니 각자 조사 치리할 것. ② 이용도씨는 경성지방회에 조회할 것. 한준명은 함중노회에 조회할 것. 백남주씨는 원산에서 이런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 함남노회와 성경학교 이사회에 조회할 것. ③ 목사의 성직을 가지고 이번 일에 참가한 김경삼씨는 오는 4월 노회까지 시무정지 …
다음은 1주일 뒤 "「이세벨」무리를 삼가라 ㅡ 평양임시노회 결의를 보고"라는 사설이다.
1932년 12월 14일 (제17권 제51호/제889호)
분류 : 사설
「이세벨」무리를 삼가라 ㅡ 평양임시노회 결의를 보고
근래 교회에 어려운 문제들이 있으니, 남조선 지방으로는 무교파주의의 신자들이 기성교회를 훼방하여 형해만 가진 교회라고 선전하고 다닌다. 황국주파는 북간도로부터 시작한 듯한데, 황씨가 기도하는 중에 묵시를 받아 예수께서 자기에게 사섯다하여 그를 따르는 자 중에 그를 주님이라 선지자라 부르는 이가 있으니 그 피해는 황해도 방면이 가장 심하다. 원산에서는 여선지를 중심으로 기도하는 무리가 있어 그녀가 예언도 한다고 하는데, 평양의 기도 모임에는 이용도 목사도 참가한 듯하다. 그런데 근일에는 소위 선지자라는 한준명씨가 이용도씨의 소개를 가지고 평양에 가서 어떤 여인으로 '새 주'를 삼고 자기는 스스로 천사라 하여 새 주를 시립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경배케하고 예언을 하기도 하며 방언을 통역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제 이 무리들을 '이세벨'의 당이라고 하고 싶다. 예전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두아디라 교회를 어지럽게 한 자는 '이세벨' 당이다. 이세벨이 자칭 선지라하여 교회를 현혹케 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무리들도 자칭 선지라 새 주라 하며 교회를 어지럽히고 말세라 하여 가사를 돌아보지 않게 하고 스스로 성자라 하여 남녀의 무리가 한 방에 모여 밤을 새어가며 자고 먹고 하여 풍기를 문란케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세벨의 무리에게 유혹을 받지 말고 건전한 믿음의 장부가 되자.
이 사설을 근거로 감리교단 경성지방 교역자회에서는 이용도를 조사 심문하였다. 이때 이용도는 '시무언'하지 않고 자기를 해명했다. 사태가 시끄러워짐에 이용도는 사임원을 감리사에게 제출했다. 목사직을 버리거나 교단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순회목사직'을 사임하는 것이었다.
사태의 복잡성을 말해주는 대목은, 감리사가 이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사방에서 이용도에 대한 욕이 밀려드는 때에 그는 왜 이것을 거절했을까? 이용도가 정말 '이세벨의 무리'였다면 왜? 또한 경성지방 교역자회는 고작 이 사설 하나를 "증거로" 조사위원들을 구성하여 장장 7시간동안 달라붙어 질문하였으나 아무 조치도 내리지 못했다. 물론 <기독신보>는 이용도와, 30분 대면도 없었다.
진실에 접근하는 통찰력 있고도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는 신중한 눈으로 이 기사를 읽어야 한다. <기독신보>는 장·감이 연합으로 발행하던 주간지로, 이때의 주필은 장로교 목사인 전필순(1897~1977)이다. 본 사설이 전필순의 붓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주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승인이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 기사는 11월 28일 평양임시노회의 결의에 대한 <기독신보>의 '입장'이다. 지난주인 12월 7일에 나간 주제의 '재탕'이요, 다시 한 번 이용도를 '문제아'들과 연결 짓고 있다. 이용도 관련 내용만 보면, "평양의 기도 모임에는 이용도 목사도 참가한 듯하다"며 '추측'한다. "평양의 기도 모임"이란 무엇을 말하는 건가? '한준명 사건'인가? 이용도 자신이 갈 수 없어 한준명을 보냈는데 어떻게 그 모임에 이용도가 "참가한 듯'할 수 있는가? 한준명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이용도는 함남에서 10여일을 보냈었다.
또한 기사는 평양에 가서 어떤 여인을 새로운 주님으로, 자기는 천사로 주장하며 새 주님을 세웠으며, 예언과 방언통역을 했다는 한준명을 이용도가 소개했다는 것이 부각 된다. 그래서 이용도가 어떻게 '이세벨의 당'이 된다는 건가? 너무도 파격적인 주장들이 "듯하다"의 무책임함으로 던져진다.
이들이 이세벨의 당이 되는 것은. "교회를 어지럽히고 말세라 하여 가사를 돌아보지 않게 하고 스스로 성자라 하여 남녀의 무리가 한 방에 모여 밤을 새어가며 자고 먹고 하여 풍기를 문란케" 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이 언제 어디서 남녀가 한 방에 모여 풍기를 문란케 하였는가? 그 증거가 있는가? 또 이 주장이 이용도와는 어떻게 관련되는가?
본 기사에서 "이 무리들"이라 할 때는 직접 언급된 무교회주의 신자들, 황국주파, 원산 여선지, 천사(?) 한준명, "어떤 여인" 등만 아니라 "참가한 듯하다"는, 한준명에게 소개장을 주었다는 이용도도 포함되는 것인가? 문법적으로 읽을 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애매하다.
<기독신보>의 이 사설(社說)은 적어도 이용도와 관련해서는 최악이었다. 글쓴이도 불분명한 이 사설(邪說)은 당시 초유의 관심사인 이용도 목사를 때릴 수 있는 애매한 장소를 제공해주었고, 이 애매의 공간은 의심의 창의성이 풍부하게 싹 날 토양을 허락해주었던 것이다.
이런 기사를 '정통성' 있는 자료로 받아들이는 것은 흡사 복음서를 읽지 않고(혹은 사도들의 증언을 거부하고) 대신 적대적인 바리새파와 정로들의 증언만 듣고 예수를 알려하는 것과 같다. 비판에 속이 근질거리는 위인들에게야 이런 기사가 '진실'이었겠지만, 비판자들의 말만 듣는 위험성은 사실과는 걸리가 먼 이야기들을 사실로 믿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예를 들면, 마28:11~5).
재료선택과 연구자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림에 있어 '자료의 질'과 '연구자의 성향'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어떤 자료를 통해 그 사람을 이해할 것인가?' 이때 가장 중요한 자료는 그 사람 자신이 한 말이나 남긴 글이다. 이용도의 경우 그의 일기와 편지, 설교문 등이 이것이 된다. 이는 <기독신보>나 어느 적대자의 기록보다 중요하게 이용도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자료다.
애석하게도, 자료가 동일하다고 동일한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라는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자료를 놓고도 이용도에 대한 선입견(혹은 교파나 신학전통의 선호, 교권적 관계 등)에 따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결승선에 도달하기 전 출발선에서 이미 결승선을 그리고 있다.
같은 자료이나 연구자는 임의로 취사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정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비판자들의 불합리한 점은, 그들은 비판적인 '1'의 자료를 가지고 이용도를 말하려 하고 '99'의 풍성한 자료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이용도의 일기, 서간집 등보다 <기독신보>의 애매한 기사나 여타 이용도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인사들의 글을 더 중시한다. 눈이 어두운 걸까, 아니면 마음이.
이것은 그 연구자가 어떤 성향인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격인지, 어떤 인간이지도 보여주는 것으로, 그는 '진실'이나 '보편'보다는 교파심 같은 정치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지 자신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래, 각자 입맛에 따라 자료를 선택할 것이다. 단, 진실에 근접하는 비평은 오직 애정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판이하게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자료 선별과 선택의 과정에서 각기 다른 인격이 자라나고 다른 열매를 맺으니,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한 연구만이 심판대를 견딜 것이다. 99를 버리고 1에 집착하며, 99마저도 선을 악으로 바꾸는 일을 '왜곡'이라고 한다(그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이는 하나님의 정의 앞에서 용납되지 못할 일이다.
선정적인 이 기사가 나간 뒤부터는 이용도를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더욱 빨라진다. 김인서는 이쯤이면 이용도를 다 정리한 듯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럼, 이 세상에서 "용도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던 산정현교회 송창근 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