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남본정교회 집회 간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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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5-02 12:01 조회4,9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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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근원_ 김경숙
우리 해주에 오셔서 1주일 동안에 목사님은 그 눈물과 그 땀을 다 쏟으시고 그 피를 충분히 말리셨다. 그런데 목사님이 해주를 떠나가시는 시간이 왔다. 목사님이 타신 기차가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에 이 마음은 형용할 수 없으리 만치 애달파지며 눈물이 흘렀다. 다른 형제들은 손을 들어 할렐루야를 높이 부르짖으나 나는 그러지도 못하고 오직 머리를 숙여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들어 바라보니 목사님께서 저희들을 향하여 손을 들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차가 떠나가 달아나는 차 중에서 손을 들어 해주 거리를 향하여 기도하시는 그 모습, 지금도 눈에 남아 있다.
섭섭한 발걸음을 눈물로 돌려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지으려고 하니 감사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작한 이 눈물, 밥을 다 짓기까지 그냥 흘렸다. 눈물을 섞어서 지은 그 밥을 퍼다 놓고 먹으려니 눈물에 목이 메여 먹을 수가 없어 슬며시 밥술을 놓고 부엌으로 나오니 그저 눈물뿐이었다. 방으로 들어가도 또 그저 눈물. 이리하여 그 한밤은 눈물로 밝혔다.
감사의 기도와 감사의 눈물로 지내는 5~6일 동안에 30년 동안이나 더러웠던 마음과 골수에 젖었던 누추한 생각이 주님의 따뜻한 사랑에 다 녹아져버리는 것이었다. 사랑에 녹아진 때 발걸음에 힘은 없어도 마음에 혈기는 다 죽어졌다.
주님의 뜨거운 피로 새 생명을 얻게 된 몸과 마음은 무한한 생기와 활력을 얻었다. 위대하신 주님의 능력과 사랑에 붙들리자 수십 년 고질에 피곤하던 몸은 든든한 원기를 얻었다. 올무를 벗고 광명한 햇빛을 받게 된 이 마음은 목사님을 향하여 추앙의 열을 점점 높이고 있다.
어느 날 시냇가로 빨래를 하러 나갔다. 전날에 야외 예배로도 다녔고 춘추로 산보도 늘 다니던 길이다. 전에는 봄 꽃이나 가을단풍이 별로 흥미를 일으키지 못하던 곳이다. 그런데 빨래질 가는 이날,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밝고 묘한 수양산이 저를 보고 인사를 하더이다. 노랗게 붉은 단풍잎이 또한 웃으며 인사를 하더이다. 이 몸은 어찌도 자유롭고 기쁜지. 팔은 빨래 광주리를 붙잡고 있으나 마음은 자유와 기쁨에 춤추고 있더이다. 아, 모든 자연의 경치의 아름다움이여, 빨래 광주리를 머리 위에 이니 머리는 곧 면류관을 쓴 듯 대자연이 축하를 하더이다.
목사님, 이렇게 자유롭고 즐거운 세계가 전에도 있었던가요. 지금의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요, 전날의 그 몸은 아님이 분명히 느껴집니다. 내 마음 또한 내 것이 아니오며 내 생각도 또한 내 것이 아니오매 주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내놓았습니다. 내놓으니 이렇게 기쁘고 즐거워지는군요.
"오 주여, 자유의 낙원에서 길이 살게 해주시옵소서. 아멘."
7개월간의 울음_ 배윤희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신앙상의 고민으로 울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용도 목사께서 1932년 초겨울에 우리 해주에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부터 신앙의 부족과 양심의 고민으로 울기 시작한 것을 멈출 수가 없어 계속하여 7개월 동안을 울었습니다. 울어서 죄를 눈물로 다 씻어버리고 가슴 쳐서 죄악의 덩어리를 다 부수어 버린 후의 기쁘고 즐거운 생활의 맛이란 참으로 낙원임을 알았습니다.
목사님이 다녀가신 후 몇 달 동안 기도하며 애를 쓰노라니 자연히 마음이 기쁘고 유쾌하여지며 감사가 한없이 솟아오름을 느꼈습니다. 이때 만사가 오직 감사뿐이요, 24시간 그냥 기도의 계속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자동차를 타고서 길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에 나는 자동차 안에 앉아서 길 가는 사람들과 산천의 초목들을 위하여 그저 축복의 기도를 올리었고 감사와 환희의 찬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면서 갔습니다.
이때의 심경(心境)을 회고할 때마다 그저 하늘나라에 가서 선유(仙遊)하는 느낌을 얻는 동시에 그때가 늘 그리옵고 그런 경지에서 길이길이 살고 싶은 생각이 항상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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