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떨어진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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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4-23 11:55 조회5,2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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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호빈에게 보낸 편지 중 안주 집회와 관련된 내용을 보았다. 이어지는 편지는 평양에서 있었던 일의 내용이다.
이호빈 씨에게 (이어서)
10월 7일 평양 노회에서는 시무언은 노회지경 안에 일체 들이지 말기로 39대 52로 가결 통과. 평양 성내 교중(敎衆)들은 술렁술렁. 안주를 마치고 11일 밤차로 입평(入平)하여 몇 사람 만나니, 부인들은 울고 남자들은 쓴웃음. 지금은 북진 행차 중. (오전 9시반 평양발)
"이용도는 예수를 중심으로 하고 설교함에 진리는 있다. 고로 진리를 먹으려면 그를 청해야겠다. 그러나 그를 청하면 그와 같이 못하는 그 교회 목사가 푸대접을 받게 되므로 그를 청하지 말아야겠다"가 가편론자(可便論者)의 한 이유. 그 외에는 무근지설(無根之說)로 책잡으려던 것이더라고.
김예진 형이 의자에 돌립(突立)하여 "노회원들아, 너희가 마땅히 회개할 것이거늘 어느 때까지나 진리를 거역하겠느냐. 이용도면 어떠냐, 진리면 받을 것이지" 대성대질(大聲大叱)하고 3~4인에게 붙들려 앉힘을 당하는 등 굉장히 활극 연출. 김영선 형은 성령에게 이끌려 봉천행. 가족 다 버리고. 기도단 죽일 놈 살릴 놈 해도 그래도 노방 전도자와 사경(死境)에 약입(躍入)하는 결사적 전도자는 그들 중에 있음을 어쩌오. 평양에서는 적극적으로 공회적(公會的)으로 핍박 대두. 나와 교통도 엄금한다나요. 앞으로는 막 책벌, 축출이 속출할 듯. 그러므로 저희들은 벌써 집회장소 고안 중이더이다.
도산(島山)의 질녀, 곧 안치호 장로의 딸. 그 여성도는 8년 고질을 고침 받고 그 영도 중생, 대보산에도 따라왔었고 원산도 왔었고 안주도 왔었고 또 북진도 동행 중. 두 번이나 안주서 간증했는데 천만인 중에도 자기는 나를 위하여 증거하겠다고. 아주 열렬한 급행열차식(式). 그는 비관 자살을 도모하다가 미수. 독약까지 먹었으나 죽어지지 않았다고. 이제는 영육 신생. 원산서 귀로에 도산에게 장문으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이제부터는 자기는 예수의 종이 되었다고 작은아버지도 기도 많이 하고 예수에게 위로 받고 구원 얻으라고 전도.
10월 [13일]
경의 차 중 안주역에서 시무언
안주에서 은혜가 부어지던 시간에 평양에서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안주에 성령의 불이 떨어질 때 평양에서는 금족령이 떨어진 것이다. 이용도를 평양노회 소속 교회들에 들이지 말라고 결의한 이유는,
① 이용도는 거짓말쟁이다.
② 이용도는 대접 받기를 좋아한다.
③ 이용도는 파괴주의자다.
④ 이용도는 질서를 혼란케 하는 자다.
⑤ 이용도를 단에 세우면 본 교회 담당목사가 푸대접을 받아 살길이 막연해진다. 그러므로 이용도를 우리 노회 지경 안에 들이지 말자.
이용도는 안주 집회를 마치자마자 밤차로 남쪽 50km 평양으로 향했다(현재, 평양노회 결의 4일 뒤). 쓰라린 눈물과 허탈한 쓴웃음이 그를 맞아주었다. 노회의 내막을 들어보니,
"이용도는 예수를 중심으로 하고 설교함에 진리는 있다. 고로 진리를 먹으려면 그를 청해야겠다. 그러나 그를 청하면 그와 같이 못하는 그 교회 목사가 푸대접을 받게 되므로 그를 청하지 말아야겠다"가 가편론자(可便論者)의 한 이유. 그 외에는 무근지설(無根之說)로 책잡으려던 것이더라고.
이용도는 금족령이 39대 52로 가결, 통과되었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다. 이는 노회 참석자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금족령의 찬성자는 2/3가 되지 않았다. 근소한 차이로 통과된 것으로, 이를 비율로 치면 3대 4요, 43%대 57%다('기권'을 포함하면 찬성비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노회내에도 이 결정이 옳지 않아 반대할 만하다고 생각한 총대들이 거의 절반이나 되었다는 의미다. 이 결정에 평양 교우들은 당황하여 술렁술렁하였다. 변종호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지난 해 연말에 명촌과 산정현 집회에서 큰 은혜를 받은 평양성의 신도들이 이번 여름의 명촌, 신암의 집회에서는 결정적으로 신앙의 내용과 생활 태도에 변동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런 변화(성령에 의해서 신도들이 새로 지음을 받는 일)가 교권자, 목사들에게는 공포와 위협으로 나타났으니 무능한 교역자들이 자기의 지위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양노회는 또 한 개의 다른 법안을 통과시켰으니 이용도를 평양노회 지경 안에는 들이지 말자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 내용은 아주 솔직한 것이었으니 이용도를 세우면 그만치 설교 못하는 본 교회 목사가 푸대접을 받고 그의 생활이 위협을 받을 것이니 그를 노회 지경 안에 들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변종호에 의하면, '내 교회'의 '내 교인'들이 '내 설교'로는 그런 역사가 없다가 이용도의 집회를 통해 거듭남을 체험하고 신앙의 변화를 얻자 '자기의 지위에 불안을 느낀 무능한 교역자들'이 노회 모임에서 "또 한 개의 다른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하니, 이것이 이용도 금족령이다. 평양노회 목회자들의 설교가 이용도보다 못하기에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되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고, 그 외의 이유들은 무근지설로 "책 잡으려던 것"이었다고 한다.
이 결정이 떨어지자 평양신학교 학생이며 장대현교회에서 신암교회로 간 김예진 전도사는 의자를 박차며 일어나 노회원들을 향하여 크게 꾸짖었고, 사람들에게 붙들려 앉힘을 당하는 등 난폭한 장면을 연출하였다.
김예진의 말 중에 정곡을 지르는 대목이 있다.
"이용도면 어떠냐, 진리면 받을 것이지!"
그는 평양노회가 기도단 해체를 명령하고 이용도 금족령을 내린 것은 신앙적 차원이 아니라 사실은 이용도가 싫어서 ㅡ 인간적인 질투와 시기가 근본 이유여서 ㅡ 그러는 것이라 생각한다.
2000년 전,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던 예수님을 못 박은 이들의 가장 솔직한 이유도, 예수님이 싫었던 것 아니던가! 그 뛰어남, 그 위대함, 그 사랑, 그 능력,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그 설교! 그리고 또 하나 있으니, 나보다 이용도를 더 따르는 내 성도들! 질투와 미움은 공회적으로 나타났고 이용도와는 연락도 엄금하였다.
평양기도단의 김영선 전도사는 노회가 "기도단 죽일 놈"하는 것에 아예 대꾸를 않고, 지저분한 '교권의 속세' 혹은 '세속적 교권'을 떠나 당시 일제의 침략을 받아 세워진 괴뢰국인 만주국의 봉천으로 전도 길에 나선다. 그는 왜 갑자기 떠났을까? 어리석은 이 결정과 뻔한 속내에 회의를 느껴서 그랬던 걸까?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는 막 책벌, 축출이 속출할 듯"하다는 점이다.
송창근이 "하나님의 사랑을 도맡아놓고 받는 저들"이라던 "기도하시는 형제자매들"은 이날 이후로 어떻게 지냈을까? 변종호는 "당시 정황과 관련한 평양기도단원의 간증"이라면서, 10월 당시로부터 1932년이 거의 저물어가는 때까지의 모습을 전해준다.
1932년 10월 평양노회에서 경내 입족(入足)금지의 결의가 있은 후로 우리 동지 몇 사람은 각 동지의 집으로 몰려다니면서 울며 기도드리고 통곡하며 하늘에 호소하였습니다. 김예진, 김지영, 나학주 등의 집으로 몰려다니던 우리는 종현 씨 집에서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이용도만 아니라 이용도를 따르는 무리들도 수난의 소용돌이로 던져졌다. 그 심경은 그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교회를 사랑했으나 바리새당과 율법사와 사두개당은 자기의 종교적 세력을 빼앗기는 감이 들자 이들의 등을 밀쳐냈다. 이런 일은 인류의 종교사에 원형적으로 반복되어 오면서 인간의 사악함을 드러내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참으시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은 칭송해 마땅하나, 그렇다고 인간들이 회개치 않고 있어도 될 여유가 주어지는 것은 추호도 아니다.
편지 끝에는 도산 안창호의 질녀 안성결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이용도의 집회에서 육의 병만 아니라 영의 신생까지 얻은 후, 도산에게 간중하며 신앙을 권면하였다. 그녀는 천만인 중에도 이용도를 위하여 힘쓰겠음을 선언하고 그를 따른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이용도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겠다는 이듣도 많고 이용도를 내쫓고자 목숨을 건 노회도 있고. 그런데 노회 내부에서도 43%가 반대의 손을 들었음은 차분하게 음미해볼 부분이다.
다음 집회는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 거기서도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닌지. 오 주여, 긍휼히 여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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