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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경건낙서敬虔落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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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4-04 14:20 조회5,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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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창근 씨에게

   하양(下壤)하신 후 소식 몰라 한편 궁금도 하고 한편 염려도 없지 않구먼요. 방학은 되었겠지만 몸과 맘은 쉼을 얻기 어려운 형편이라 어찌 억지로 안연히 스스로 평안을 자취(自取)하시겠습니까. 어느 누구라 붙들어다가 어느 구석에 두어 좀 쉬게 한다면 마지 못해 그렇게나 할 수 있을는지.

   저는 육편(肉便)으로 보면 아주 사나운 팔자를 타고 낳습니다. 그러나 영편(靈便)으로 보면 예수의 팔자와 거진 같은 팔자라오. 어쨌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팔자였으면 그만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육이 곤고할 수밖에 있나요. 십자가로써 그 팔자 그 운명을 설명하게 된 것이니까.

   형님, 우리는 쉴새 없는 것을 축복으로 알고 병약함을 은혜로 받읍시다. 우리는 그것에 주의 보혈을 섞어 요리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진미를 만듭시다. 그러한 모든 곤고가 아니면 어디서 십자가의 진미를 맛볼 여지가 있겠습니까. 주께서 허락하시면 좀 고요한 곳을 찾아 기도와 명상으로 보냈으면 하지만 글쎄 허락이 있을는지요.

   우리 집은 여전합니다. 매우 경과가 양호합니다. 먹고 마시고 여전히 찬송하고 기도하고 웃음으로 이야기도 하고 그러나 오히려 신앙과 성애(聖愛)의 불의 성세(盛勢)를 보지 못하게 됨이 한갓 안타까운 일이요, 피땀으로써 봉사하지 못함이 한 될 뿐. 그 외에는 다 축복 100%의 생활입니다.

   지금도 식객이 본 식구 외에 6인이니까 합 12인이 날마다 이 밥으로만 삽니다. 아, 내 어찌하면 이 굶주린 인생들을 끝까지 배 골치 않도록 먹일 수 있을지 또 어찌하면 이 부초(浮草) 같은 인생들 그 방향잡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참된 진리의 길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이 일에 조력이 있을 수 없는 물건이라면 나는 왜 세상에 있게 되었겠습니까.

   아, 슬프다. 내 배의 주림이여. 내 심신의 피곤함이여. 이는 저이가 곧 나의 지체가 됨이로다. 저이가 슬프매 내가 슬펐고 저이가 굶주림에 내가 기운이 없었고 저이가 방황함에 내 마음이 붙은데 없구나. 내 배가 고픔은 저이를 위힘이요, 내 심신이 피로함도 저이를 위함이로다.

   오 형제여, 자매여, 너희로 인하여 주리고 너희로 인하여 헐벗은 나의 영의 움직임을 너희는 아느냐 모르느냐. 너희는 나를 믿으라. 나의 사랑을 알고 나의 뜻을 배우라.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리라.

   너희는 무엇을 위하여 방황하며 무엇을 위하여 분주하느뇨. 의를 모르고 진리를 모르고 사람을 모르고 무엇을 위하여 분주방황 하는고. 이는 오로지 너희의 정욕과 물욕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잡기(雜技)나 외도(外道)가 아니뇨?

   오 형제여. 너희는 내 말을 듣고 회개하라. 천국은 너희 곧 앞에 있을 것이니라.

   내 말을 믿는 자는 나를 보낸 아버지를 믿는 자요, 나를 배우지 않는 자는 진리와 생명과 참된 도를 알지 못할 자이니라.


   나는 이렇듯 한 주의 성성(聖聲)을 식탁 후에 들었습니다.


   아, 그러나 나는 저희를 인하여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으며 곤욕을 당치 않았습니다. 나는 얼마나 평안하고 호의호식하며 안일한 생활을 합니까. 그런 중에도 얼마나 마음이 돌과 같이 굳고, 단단합니까. 저희의 굶주림을 보면서도 나는 배불리 먹어 감사를 올리고 돌아설 뿐이며 저희는 헐벗었으되 그를 보면서도 나는 나의 몸이 헐벗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만 생각하여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설 뿐이 아니었습니까. 아, 나에게 저주가 있으리로다. 네가 불행히 감사의 말을 배웠도다. 감사할 줄을 앎으로 너희는 망하는 것이었구나.

   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옵소서. 나로 하여금 나의 의식(衣食)을 얻어서 감사하는 자가 되지 않고 차라리 죄송을 느끼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내가 먹을 때 먹는 나를 기뻐하여 감사하지 않고 먹지 못하는 친구들과 슬퍼하여 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 주여, 나에게는 이러한 울음이 없습니다. 그런 유(類)의 눈물은 본래부터 말랐던 것입니다. 오 주여, 나에게 새 눈물을 선사하옵소서.

   아, 내가 주를 따라가는 증거가 어디 있나이까. 내가 예수를 나의 주로 하여 30년. 아, 적지 않은 세월. 그 동안 나는 얼마나 나의 주를 본받았는고. 무엇을 하노라고 30년을 지내었던고. 아, 슬프도다. 나의 30평생이여. 아, 괴롭다. 지금 내 나이 서른하고도 또 두 살이 아닌가.

    오 주여, 나에게 당신의 영이 없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의 안에 없습니다. 당신의 피는 어디 흐르고 말랐나이까. 나의 심장에서 당신의 피가 끓어오르게 하옵소서.

   오 주여, 당신을 따라가노라고 하면서도 갈수록 당신에게서 먼 것만이 나타나오니 나는 어느 때에나 당신의 옷자락을 만져보며 당신의 신들메에나마 접하여 보오리이까.

   오 주여, 저희들은 괴로워 자지 못하고 태질을 하며 또 설상(雪霜) 아래 몸이 방황하는데도 나는 무심히 침상에 누워있어 만족을 느끼는 자가 아니오니까.

   오 주여, 나에게 어디 사랑이 있사옵나이까. 내가 주를 믿는, 주를 따르는 사랑이 어디에 있나이까.

   나는 저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저희의 사정이 나에게 와서는 관계가 없습니다. 저희의 아픔도 내게 관계가 없고 저희의 번민이나 고통이 도무지 내게 관계가 없나이다.

   어찌하여 저희의 아픔이 내게 관계가 없을 것입니까. 나의 사랑하는 자들인데 왜 그들의 눈물과 슬픔이 내게 상관이 없다 합니까?

   아 주여, 나는 주를 따르는 자가 아니올시다. 혹 주를 예찬하는 자라고 하지만 내게 대하여는 이 이름만으로도 과분한 대접이 되겠나이다. 아, 정말 나는 주를 따르지 못하는 자식이로소이다. 나는 어찌하여 주를 믿고 따르노라고 공공연하게 입을 벌리었던 것입니까.

   오, 그러나 주님이시여, 내가 주를 본받으려는 마음은 없는 것이 아니올시다. 주를 따르고자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올시다.

   주여, 나의 작은 영의 움직임을 긍휼히 보시고 당신을 믿고 당신을 본받게 하옵소서. 당신을 완전히 따라가게 하옵소서. 세상의 모든 껍데기를 다 벗어 던지고 프랜시스처럼 발가벗은 몸으로 오직 주님만 따를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세상의 모든 치레가 다 나에게는 나를 죽이는 구속이 되었나이다. 오 주여, 이 치레의 구속에서 나를 해방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자유롭게 주를 따라갈 수 있게 하옵소서. 이것만이 나의 생명을 내걸고 바라는 나의 소원이 아닙니까. 아, 그러나 이 소원을 가진지 해를 세어 몇해였습니까. 그래도 아직 이루지를 못하였으니 이러다가 해는 서산에 걸리고 향로(香爐)에 불조차 꺼지면, 아, 나는 그냥 그 소원에서 나의 생명을 다하고 말 것입니다.

   이루지 못하는 소원. 생각만 하여도 얼마나 가여운 일입니까. 그러나 이루지는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주를 따르는 이 소원, 이 소원 하나를 소유하였다는 일만은 얼마나 큰 일입니까. 내게 있어서는 이로써만도 천국에 오를듯한 기쁨을 가질 것입니다.

   아, 그러나 언제까지든지 다만 이런 소원자로만 있어 어찌 그런지 마음이 무척 애연합니다. 오 주여, 나의 그릇이 당치를 않아 당신이 이루어 주시지 않을 셈 치고라도 나는 그냥 이 기도를 담아 향을 피우기를 내 일상에 그치지 않을 작정이올시다. 아, 이 향로의 연기가 심히 가늘다고 할지라도 나의 생명이 땅에 떨어지기까지는 그것이 끊어지지 않으리다.

   가령 나중까지 당신이 불응하신다고 해도 나는 낙심이나 원망을 하지 않으렵니다. 이루어 주시고 안 주시는 것은 당신의 일이옵고 기도를 올리고 향을 피우는 일은 나의 일이오매 나는 언제까지든지 나의 일을 계속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이 기원을 올리고 있을 것인가 하면 다시금 마음은 끝없이 애연해요. 그래도 그만 두라면 나의 영은 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나를 영원히 기도자로 있게 하는 까닭이 아닙니까.

   오 나의 주여, 사랑의 주님이시여, 내가 기원의 눈을 뜰 때에 당신의 전체는 보지 못한다고 해도 다만 옷자락만이라도 안개와 같이 고요히 드리워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꿈이라고 해도 나는 거기에 입맞춤을 얻어 만세의 질고(疾故)와 천고(天苦)의 원한을 세척하고도 남음이 있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붓대는 한참 달리었습니다. 보실 수 없거들랑 두었다가 이 다음에 다시 내게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김예진 형 보고 좀 보라든지. 그 형은 내 망필(芒筆)을 해석하는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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