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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5-08 12:38 조회4,8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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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R 씨로부터(이어서)
형님, 나는 그날 다시 새로운 생명에 감촉(感觸)됨이 있었던 것이올시다. 나에게는 다시 어떠한 당겨짐이 있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각오가 있었던 것입니다. 형님, 나는 이제 내 뜻대로 살려는 생활에서 속히 떠나기를 원하나이다. 다만 주께서 나의 중심을 통하여 움직여 주시며 내가 거기에 절대로 복종할 수 있는 그 순종만이 내게 있어지기를 원하여 기도할 뿐입니다.
내가 디디고 있는 이 지대, 내가 나타내야 할 이 시대, 이러한 환경에 처하여 주께서는 나에게 무슨 명령을 내리시려는 지 모릅니다. 나는 고요히 그 명령을 기다리며 그 생명과 진리를 먹고 마시어 그것으로 내가 살쪄지기를 원하올 뿐이올시다.
나는 근자 인생의 생(生), 애(愛), 사(死), 고(苦)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이 느낀 바가 있어 주께 감사하고 있는 바이올시다. 나는 거기서 기독교란 종교는 생의 전부요, 애의 전부임을 깨달아 나는 이 생과 애의 진리를 위하여 나의 생의 전부를 바칠 것을 생각할 때 그 감격을 무어라고 말할 길이 없습니다.
형님,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만이 아니요, 기사나 이적만의 종교도 아님을 나는 확실히 알았나이다. 그런데 세인은 기독교를 신비나 기사, 이적만의 종교로 알아 이것을 의논하고 이것을 가지고 시비곡직을 판단키 위하여 참된 생명과 진리에서 떠나는 것을 봅니다. 현대 종교교가들은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등등의 위대한 진리는 뒤에다 딱 돌려세워놓고, 종교적 신비를 말한다 하여 어떠한 초인적 황홀의 경을 말한다 하여, 기사나 이적을 말한다 하여 ㅡ 조그맣게 나타나는 지극히 적은 일들을 확대하여 가지고 시비를 논하다가 당파를 만들고 분쟁을 일으키어 결국에는 기독교회의 추태를 세인에게까지 보여주는 형편, 아 주께서 눈물 흘리고 계신 현대가 아니오니까.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슨 기사나 이적만을 위하여 오셨던 어른이 아니요, 신비적 활홀경만을 노래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었으니 주께서는 인간과 함께 먹고 마시고 쉬어가면서 다만 하늘의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말씀하시어 천국이 하늘 위에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하여 인간의 완성을 위하여 피땀을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를 말씀하셨으며 사랑을 외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그 진리와 사랑을 이해치 못하고 다만 기사와 이적만을 구하기에 급급하였던 것이 아니오니까? 너무도 그들이 간절히 원함으로 주께서 어떤 때는 기사도 보여주셨고 이적도 행하시어 그들에게 권능을 보여주시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경고를 하시었고 또 당신의 사명이 거기에 전혀 있지 않으심을 명백히 말씀하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 ㅡ 예수를 이해하였다는 사람들 ㅡ 중에도 예수는 이적을 행하러 온 사람으로만 알아 그것에만 포착(捕捉)되었고 예수를 모르는 사람도 그 이적에만 막히어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하여 예수를 핍박하기에 분주하였던 것이 아니오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현대 기독교회들도 가장 그리스도를 잘 이해하고 신앙한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으로서 이 기사 이적이라는데 신경과민이 되어 있습니다. 그 위대하신 진리의 생명과 사랑을 의논하는 일은 모두 제쳐놓고 밤낮 의논하고 싸우는 일이 모두 이적 기사가 아니오니까. 형님께서 말씀하시던 그러한 일들의 중심 문제란 것도 ㅡ 물론 근본적 결함에서 나타나는 모순을 계기로 한, 일종의 부수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ㅡ 모두 조그마한 기사에 막혀서 그런 것 하나를 소화할 수 없어서 껄떡이고 있는 것이외다.
통재(痛哉)라! 현대의 신앙가들이여, 티끌보다도 작은 기사나 이적만을 붙들고 붙들어야 할 진리와 생명의 전체를 놓쳤으니 어찌 너희들에게서 사랑을 찾을 수 있으랴. 주먹을 든다. 몽둥이를 든다. 욕을 토하고 발길을 내댄다. 모두 종교가로서는 못할 짓이다. 아, 참 너희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와 사랑을 소유치 못한 자들이니 종교가라고 부르기는 하나 사실은 종교가랄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런고로 비종교가로서나 할 수 있는 발길질이나 주먹질이나 몽둥이질이나 욕질을 하는 것이니라.
아, 그러나 그대들이여, 고요히 그대들은 그대들의 중심을 살핌이 있고 그리스도의 신앙의 근본 의(義)가 어디 있는가를 깨달으라. 진리를 옹호한다고 하면서도 그 진리를 매장하기에 급급한 현대 종교가들아, 너희가 하늘에 오를 듯싶으냐. 음주에 떨어지리라. 너희들의 권세가 세상을 판단할 듯싶으나 너희의 그 권세가 하나님의 권능 아래 꺾일 날이 있을 것을 깨달으라. 너희들은 너희의 위에 아무도 없는 줄을 아느냐. 아, 가증한 무리들아 너희 위에서 찰나(刹那)도 쉼 없이 주의 눈이 살피고 있음을 깨달으라.
형님, 나도 느끼나이다. 이제 저들은 설교나 기도로써 가르쳐 먹일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나이다. 저들을 가르칠 유력할 재료는 오직 눈물, 피, 죽음인 줄을 확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형님, 형님, 이미 그것을 깨달으셨으니 그리고 준비하셨으니 그냥 그대로 눈물을 뿌리소서. 눈물을 뿌리었다 하거든 피를 뿌리소서. 피를 뿌려도 안되거든 죽음을 내주소서. 그리하여도 저들이 깨닫지 못하거든 그대로 주 앞으로 기쁘게 가시옵소서.
그 뒤에 내가 서리이다.
나에게도 눈물, 피, 죽음, 모두 있소이다. 나는 이미 이것을 각오하여 여러 번 주께 이 생명을 그렇게 받아주시기를 원하여 기도하였나이다.
그대로 나아갑시다. 주께서 이미 십자가를 지셔서야 그 진리를 인간들에게 전하실 수 있었으니 이제 이 지대에서는 저들도 의인의 피를 마시어야만 그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소화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느낍니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에서 살아 무한의 기쁨이 있으며 그것을 위하여 이 생명이 죽어야 무상의 영광임을. 그러나 이 생명은 아직까지 그 같은 생명 속에서 살지 못하고 그 외에서 헤매고 있음을 한(恨)하여 눈물 지우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이미 받으셨으니 나를 버리시지 않으실 것을 확실히 믿어 다만 그에게 순복할 것을 준비하고 있나이다.
형님, 나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와 사랑 안에 있어 신비와 이적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떠나 아무것도 용납할 수 없사오며 또는 하기가 싫습니다. 종교적 이론, 의식, 제도, 신조, 교리, 철학적 지식, 역사적 사실 등 아무것도 소유하여 만족되지 않으므로 그 소유를 원치 않나이다. 다만 그 생명, 그 사랑, 그 진리를 소유하여 내가 그 자체가 되어서 살아 움직이어 설교보다도 기도보다도 아무런 전도보다도 나의 생활 그것이 그 전부를 말하여 주는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 주께서는 진리는 이런 것이다. 생명은 이렇다. 빛은 이래야 된다. 말씀하시지 않고 "나는 곧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니……"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그리고 주께서는 당신만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그렇게 될 수 있는 동시에 그보다도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까지 말씀하셨으므로 나에게 가장 큰 괴로움과 슬픔은 여기까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올시다.
나는 내게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고 다만 그 진리, 그 생명, 그 사랑만을 찾을 수 있기에 세상 사람이 내게 와서 구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줄 수 없으되 그 진리, 그 생명, 그 사랑만을 줄 수 있어 무한히 기쁜 것이었으며 최고의 행복이 되겠나이다.
아, 어느 때에나 내게 이때가 오리까?
끝으로 나의 간증을 형님께 드리오니 - 아니 간증이라기보다 나의 호소로 말씀 드리오니 우리는 예수와 함께만 가십시다. 바울의 파(派
)도 되지 말고 프란시스, 어거스틴파에도 가담치 말고 루터나 웨슬레나 내촌감삼, 칼빈, 스베덴보리 등 아무 파에도 가입하지 말고 오직 예수파의 사람으로서 이 조선 도상에서 일하여 주사이다.
그리고 또 우리의 생명이 다하기를 맹세합시다. 이 말은 형님의 하시던 말씀 중에서도 들은 바이오나 그러나 나도 이미 이것을 느끼어 위에 말한 사람들의 글을 읽어도 보았고 또 읽기를 원하는 것도 있으되 나의 중심은 벌써 그것을 느꼈나이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르겠사오니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한 것만은 느끼면서 이 붓을 멈추려 하나이다. 사랑으로써 황언난필(荒言亂筆)을 용서하소서.
1932년 10월
평양에서
PHR
평양의 PHR은 며칠 전 이용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지의 비판적 어조가 상당한 것으로 보아 10월 7일 결의 이후일 것이다. PHR은 교회의 우두머리들이 기독교의 본질인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제쳐놓고, 기적 이사를 두고 밤낮 의논하고 싸우는데 이것은 결국 작은 하나를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이용도의 집회에서 기사와 이적이 일어났던 것을 두고 이를 소화하지 못해 캑캑대며 문제성 탐구에 집착하던 사람들을 비판하는 말로 보인다.
PHR은 상당히 흥분하여 편지에 대고, '너희들은 너희의 위에 아무도 없는 줄을 아느냐'며 꾸짖는다. 이는 교권자들이 늘 두려운 마음으로 기억해야 할 사항이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총회장이나 배후의 재력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곳에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이 있음이니라"(전5:8).
이용도는 PHR에게, 그런 이들은 설교나 기도로 가르칠 수 없고 오직 눈물, 피, 죽음으로만 될 것임을 이야기했다. 이용도는 눈물을 뿌릴 것이고 그것으로 되지 않으면 피를 뿌릴 것이다. 혹 그것도 되지 않으면 마지막은 죽음이다. 이마저도 되지 않는다면 이제 이용도는 그들의 피와 관계가 없다. "그들이 나팔의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겔33:4).
이용도가 그렇게 먼저 떠나면 PHR은,
"그 뒤에 내가 서리이다."
선지자나 예언자처럼 시대를 앞서간 이들은 대게 박해를 받기 마련이었다. '정통'이란 단어를 자기 것으로 삼으며 자부하는 이들은 자기 것이 '제일'이요 '유일'이라고 느끼는데, 이때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면 그걸 인정치 않고 제거하려 하는 불량의 특성을 드러내곤 했다. 상식만 있으면 누구나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이들은 자기의 입과 배를 위해 힘쓰는 자들,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먹는 자들로, 주님이 의의 심판대에 앉으시기 전까지는 어느 시대에나 교권의 심판대 높은 곳에 앉아 있다.
이용도와 PHR은 오직 예수를 중심으로 뭉치기로 다짐하고 생명을 다하기로 맹세한다. 믿음의 투사들! 우리도 어떤 기독교 전통(교파) 위에서 있다 해도, 오로지 "예수파의 사람으로서" 이 대한 도상에서 일함이 있어야겠다. 동시에 우리도 생명이 다하기를 맹세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의를 위해 돌진하다가 피를 뿌리고 죽는 승리가 있어야겠다.
"세상이 어떻게 압박을 해도, 심지어 주의 이름으로 주의 사역이 훼방을 당해도, 오직 주를 따라 꿋꿋이 피흘림의 길로 갈 수 있게 성령을 허락하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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