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명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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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1-26 08:48 조회5,4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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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알자. 그리고 생명에 불타 살자. 아는 것만은 신앙이 아니라 그 진리에 생명이 가하여져야 한다. 진리를 알고 배우기 위하여 설교를 듣자. 생명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 드리자. 알기 위하여 진리를 배우라. 그 앎을 생명화하기 위하여 예수를 신앙하라.
과학자는 연구실에서 모든 것을 연구하고 분석 종합하여 원리를 찾고 종교가는 기도실에서 진리와 생명을 얻는다.
진리를 아는 것보다 더 상쾌한 정신적 쾌락은 없을 것이다. 영적 생활의 진리는 여기 있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통 속에서 그의 숙고하던 비중(比重)의 진리를 발견하고 거리로 돌아다니면서 "유레카, 유레카"(나는 찾았다. 나는 찾았다) 하고 외쳤다. 과연 우주와 인생의 근본 진리를 찾는데 인생의 최고미가 있는 것이요, 생의 의미가 있다. 대생(大生)의 정신은 진리 탐구에서 대성(大成)하는 것이다.
진정한 정신 문명은 결국 소득(所得)의 문명이 아니라 소여(所與)의 문명이다. 개인에 대하여 말하면, 획득(獲得)의 생활은 정신 생활이 아니라 희생과 공헌의 생활이 정신적 생활이다. 곧 정신적 생활이란 것은 받는 생활이 아닌 주는 생활이다.
1931년 12월 9일 (수) 밤
지난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과 미소냉전을 통하여 서구 근대문명의 폐단이 여실히 드러났고, 현재는 세계화(지구화, 서구화)의 미명 아래 과거 어느 때보다 강자와 약자의, 가진 자(민족)와 없는 자(민족)의 잔인한 격차가 재채기 만큼 빠른 속도로 하품의 절정 만큼 벌어지고 있다. 그 고상하단 지식들이 가르쳐주신 것은 더 강한 힘을 통한 '획득'이었다. 이 메커니즘(mechanism)은 미친 여자처럼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아직도 버젓이 지구촌을 활보하고 있다. 허나 '소득 문명'은 번뻔한 얼굴로 지배와 착취로 나갔고, 지금도 나아가고 있다.
'세상에 거하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요15:19) 주님의 제자들은 '소여 문명' 즉 희생과 나눔의 문명을 '자기의 자리'라는 구체적이고도 개별적인 공간에다가 차근차근 심어나가야 한다. 이는 세상을 부끄럽게 만드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생활방식이요, 말은 많고 사랑은 없는 똑똑한 말쟁이들의 입을 막는 초논리의 재갈이며, 세계화에 얻어터져 피폐화된 영혼들과 민족들에게 고마운 명약이 되는, 그 자체로써 선교적 인식 및 실천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하늘의 문명이 기세를 떨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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