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 회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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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5-16 23:46 조회5,3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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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2월 29일 주일 오후 3시 31분, 서울 용산을 출발하여 4시 반 인천에 도착한 이용도는 다시 배를 타고 경기도 부천군 덕적도로 갔다. 북리교회, 우포교회가 참여하는 연합집회가 중앙교회에서 열릴 참이었다. 12월 현재 이천국 목사 시무.
덕적도에는 박정수 전도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김광우라는 사회주의자 청년에게 기독여성을 중매하여 결혼시킨 사람이었다. 그녀는 김광우에게, "이번에 오시는 분은 은혜가 많고 훌륭한 분이니 반드시 크나큰 감동을 받을 겁니다" 하며 거듭 참석을 권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 그날 저녁 집회에 참석했다. 맨 뒷줄에서 강대상을 멀찍이 바라보았다. 그때 이용도 목사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고 이상한 흥분과 함께 그분의 열띤 설교에 빠져 들고 있었다. "사랑의 힘"을 주제로 한 얘기였는데 너무도 인상적인 설교여서 나는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1984년 경]. 그분의 말씀을 옮긴다.
첫 번째 얘기
한 일본인이 대만에 장뇌(樟腦) 장사차 들어갔다. 그러다 불행하게도 식인종을 만나 잡혀 먹히고 말았다. 이 소식에 접한 아들은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육혈포를 사서 훈련을 거듭, 명사수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회의가 번지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제2의 희생이 되는 게 아닐까? 아니 그보다 그들 역시 인간인데, 인간이라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정신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근본적인 원수갚음은 무엇인가?'
그는 진정한 복수의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단순히 자기만의 복수로 끝난다면 그뿐, 차후에 또 다른 식인(食人)이 발생할 게 아닌가? 그는 "사랑"의 문제에 부딪쳤다. 전면적인 정신의 개조만이 완전한 복수라고 인정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 예수의 사랑의 가르침을 깊이 공부하고 깨우쳤다. 드디어는 대만으로 건너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모험을 감행했다. 열화같은 웅변으로 식인의 무리들을 깨우쳤다. 내가 수년 전 당신들에게 잡혀 먹힌 사람의 자식이다. 처음에는 육혈포를 가지고 원수를 갚으러 오려고 했는데, 당신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당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악 때문인 것을 깨닫고, 그 죄를 죽여서 복수하려고 이 성경책을 가지고 그 죄를 정복하러 왔다고 눈물을 흘리며 열변을 토했다. 폭포수와 같은 설교와 눈물 앞에서 한 사나이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옛날의 그 범인임을 자백하고 회개의 눈물을 뿌렸다. 일본 청년은 이에 그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사랑의 힘을 던져 그 마을을 복음의 빛으로 충만케 했다.
두 번째 얘기
식인(食人)의 습속이 뿌리 깊은 또 한 마을이 있었다. 이를 떨치기 위하여 지도자격인 오봉 선생은 법을 제정하여 주민을 교화시켰다. 차츰 나쁜 습속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젊은이가 찾아와서는, 결혼을 하려 하는데 장인 될 사람이 사람머리 하나를 잘라 올 용기가 있어야 딸을 주겠다 하니 허락해주십사 하는 것이었다.
오봉 선생은 어이가 없었으나 식인(食人)이 악한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통탄하며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릴 것을 결심했다. 그리하여 말하기를, "내일 저녁 무렵 산모퉁이에 어떤 사람이 붉은 보자기를 쓰고 지나갈 터이니 반드시 그의 목을 쳐라" 하고 분부했다. 청년은 좋아서 나갔고 오봉 선생은 탄식과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
드디어 청년은 그 산모롱이를 지나가는 사람의 목을 잘랐다. 기쁨에 넘쳐 집으로 뛰어와 보자기를 펼친 순간 동네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보자기 속의 머리는 오봉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동민들은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살신성인의 붉은 피. 청년은 크나큰 죄악을 깨닫고 자결하려 하였다. 사람들은 칼을 뺏으며 "이는 너만의 죄가 아니다!" 하고 말했다. 이리하여 식인의 악습은 근절되었다.
우화(寓話)에 자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 얘기의 본질은 내 가슴을 쳤다. 한없이 빛나는 사랑의 힘으로 인간의 추악한 모습이 벗겨지는 동시에 새로운 면모로 탈바꿈된다는 비유적 설파, 내면적 개조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는 것이며 그것은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하고 거기에 이르는 길은 제도(制度)의 개혁이 아니라 정신의 변혁이라는 힘찬 웅변. 만당의 청중은 그 설교에 심취되어 있었다.
이용도 목사는 사랑의 주님을 따라갈 사람은 손을 들고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의 찬송을 부르자고 외쳤다. 모든 사람들은 빠짐없이 손을 들고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 골고다의 보혈로 나를 씻어 줍소서" 찬송을 열렬히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오직 한 사람이 손을 들지 않고 있었다. 나는 계속 강대상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저기 검정 양복 입은 형제는 어찌하여 손을 들지 않습니까?" 하는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목사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던 듯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문제는 내게 맡겨주십시오. 나는 확실한 마음이 생기기 전에는 손을 들 수 없습니다."
나는 끝까지 냉정한 태도를 지키고 있었다. 비록 일시적 감격스러운 설교를 들었다 할지라도 어찌 한순간에 심경의 변화를 표현하는 개종의 결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스스로 자신이 냉철한 이성의 주인공임을 나타내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내가 정신적, 사성적으로 어느 정도 흔들리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날 저녁의 충격 이후 나는 사상적으로 큰 동요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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