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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예수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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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8-14 11:37 조회4,8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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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_ 누가복음 23장 13~56절

   주님 고난 당하시는 때에도 두 가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를 모욕하고 아프게 하기 위해서 홍포와 가시관을 만드는 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져다가 준 구레네 시몬 같은 자. 그리고 꼭 같은 죄로써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에도 하나는 예수를 비방하고 모욕하고 하나는 예수의 무죄와 정의를 알아 참회하고 존경했었습니다.

   주님 수난의 때에 그 많은 사람이 다 주님을 모르고 주님을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데 오직 강도 한 사람이 주님을 알 수 있고 존경한 것은 참으로 기특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낙원으로 가리라고 하신 것은 그가 범한 강도의 죄가 없어져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알았다는 한가지 사실 때문이었으니 누구나 주님을 바로 알기만 하면 그 순간이 곧 영생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요17:3~).

   간단합니다. 한 강도와 같이 나는 죄인이라는 것과 주님은 의인이라는 것만 알고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려면 구원하는 그 사람은 굶고 헐벗고 죽어야 하는 것임으로 의인 선지자 예수님은 불쌍하고 억울한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살인강도라는 것과 예수님은 의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이른다는 이 한 가지만 깨달으면 우리는 완전히 구원을 얻은 자가 됩니다.

   이 성구는 위대한 설교입니다. 강도의 그 말과 예수님의 그 음성은 지금도 우리 귀에 들려오고 있습니다. 쟁쟁하게 지금도 우리 귀를 울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신자라는 이들이 설교를 듣겠다고 밀려다니고 몰려다니면서 설교 아닌 말을 설교라고 듣고 교만하여지고 완악하여지기만 하나 우리가 들어야 할 참 설교는 항상 우리 귀에 들려오고 있음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설교하는 자나 듣는 자가 다 길 잃은 양과 같이 헛된 곳으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명상하고 이 설교만 들어야 할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려고 교회에만 따라 다니지 말고 예수님의 그 음성, 예수님의 그 산 목소리, 몸에 큰 화를 받아 숨이 장차 끊어져 가는 괴로움 속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그 설교를 들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산이 무너지고 땅이 찢어지고 대낮이 빛을 잃었습니다. 이 위대한 설교, 산천이 떨고 일광이 실색(失色)하면서 증거하는 주님의 피와 눈물의 설교를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가슴을 치면서 들어야겠습니다.

   주님의 설교에는 충격, 위로, 책망, 불이 있습니다. 예수의 눈물과 그 피 속에 녹아지는 자만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부딪히는 곳에서는 해골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 살과 피와 물의 설교는 모든 것을 깨치고 모든 것을 새로 만듭니다. 죄를 밥 먹듯 하던 자가 눈알이 쏟아지는 책망을 받고 상하여 쓰러진 심령이 이 설교에서만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설교 속에서만 참된 소망과 광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거늘 오늘의 신자들은 허튼 설교를 듣겠다고 예배당만, 목사만 찾아다니고 있으니 그 방황하는 모양 참으로 가련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디서든지 들으세요. 어디나 다 성전이요, 설교장이니 하나님과 접촉할 생각은 않고 목사만 따라다니는 신자, 부흥회 시간에만 잠깐 회개하고 예배당 문 밖을 나서면 또 그냥 그 꼴이 되는 신자, 화를 면할 길이 없습니다. 양을 먹일 생각은 하지 않고 굶기고 말리기만 하여 주님을 예배하자고 하면서 주님을 다시금 십자가에 못만 박는 교역자도 화를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교역자도 평신도도 직접 주님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주님의 설교장에 모이고 엎드립시다. 이 시간에도 나의 음성을 듣지 마시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설교를 듣는 데는 때를 택할 필요도 없고 시간을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잘 때나 깰 때나 괴로운 때나 평안할 때나 어디서나 언제든지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만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설교를 들으려 하지 않고 엉뚱한 것을 찾아 헛되이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듣고 싶을 때에만 들어보려 하나 주님은 항상 우리를 향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반가워하거나 미워하거나 개의치 않으시고 홍포와 가시관을 만드는 자를 찾아가셔서 설교하시며 피 흘리시며 눈물 흘리십니다. 주님께서 무엇 때문이 이러시는 것이겠습니까? 오직 우리를 살리기 위하심이었으니 우리는 주님의 정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이 심정을 알 수 있는 자라야 주님을 바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믿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안 가면 주님께서 찾아오시겠으니 우리가 먼저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 예배당에 올 때에도 나를 위해서 말고 주님을 위해서 오고 모든 일 모든 노력도 주님의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주님을 섭섭하게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기쁘게 하는데서만 참 기쁨을 얻고 주님께 전체를 맡기고서 주님이 해주시는 대로 따라 사는 가운데에만 참된 안심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 소중하여 주님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신앙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931년 2월 17일 오후 7시 30분 평양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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