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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충청도 어린양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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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7-19 12:51 조회5,1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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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몹시도 추웠던 1월 충북 영동장로교회로 초청되어 주일학교 강습회를 인도하는 이용도 목사. 이틀째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한 아이를 발견한다.


 

   영동 제2일

   예배당은 너무 추워서 말을 하기가 힘들다. 의기가 심히 상하여 설교도 힘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조그만 거지아이! 뚜껑 없는 주전자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손과 발은 홍도같이 빨갛게 얼었다. 바람은 눈 위에 칼같이 사나운데 저런 인간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하나님의 보우지택(保佑之擇)이었는가. 아, 죄악의 세상이라 자기만 살려고 눈에 불이 난 인간들, 어찌 이 가련한 걸아를 본 척이나 하고 지나가랴.

   마음에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여관으로 데리고 와서 두루마기를 벗어 둘러주고 아랫목으로 인도하여 이불로 둘러줄 때 나의 마음이 너무 민망하여 슬픔을 이길 길이 없었다. 오 주여, 이 아이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너 조반 얻어먹었니?"

   "못 얻어먹었어요."

   때는 11시 반이다. 뜨뜻이 먹어도 떨리어 견딜 수 없는데 아 어이 생명이 살아남았노.

   "엊저녁은 어디서 잤니?"

   "가가(假家)에서 잤어요."

   "그래 무엇을 덮고 잤니?"

   "아무 것도 안 덮고 잤어요."

   어제 저녁같이 추운 밤에 아무 것도 덮지 않고 밖에서 잤다. 밤에 볼그릇이 땡땡 언 어제 저녁에. 아, 나는 너무도 호강스러웠다. 북풍한설(北風寒雪) 추운 밤거리에서 울며 떨고 있는 아이를 생각지 않고 나만 혼자 이불을 두 개씩, 포대기 깔고 편안히 자고 있었구나. 오, 나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 혼자 잤니?"

   "네."

   "아 혼자서 어떻게 밤을 샜노. 엊저녁에 밥을 얻어먹었니?"
   "네."

   "무슨 밥?"

   "찬밥이요."

   "그래, 찬밥을 주더냐?"

   "네"

   아이의 눈에는 원망과 고독이 아직도 그치지 않았다. 나의 눈에도 참회의 눈물이 그칠 줄을 모르노라!

   "몇 살이냐?"

   "여덟 살이에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쌈하고 양잿물 먹고 죽고 아버지는 미쳐서 달아났어요."

   아 죄악이 관영하여 부모는 자살 발광하고 자식은 걸아로 만들었구나. 아 부모의 죄로 엄동설한에 거리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우는 걸아! 네게는 죄가 없다. 네게 무슨 죄가 있으랴. 눈물이 앞을 가리어 일기를 쓸 수 없어 수건을 눈에 대고 그냥 한참 울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도와주랴. 오 하나님,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 가련한 걸아를.

   "이젠 몸이 좀 녹았니?"

   "네."

   "오 그럼 조금 있다가 떡국이나 한 그릇 먹으면 괜찮지. 그런데 네 이름은 무에냐?"

   "억성이에요."

   "성은?"

   "최가에요."

   "오 최억성이로구나. 그전에 너의 집은 어디 있었니?"

   "중무요."

   "여기서 몇 리나 되니?"

   "20리,"

   "옳지. 영동서 20리라. 나는 여기에 손님으로 왔단다. 서울서. 너 예배당은 아니?"

   "알아요."

   "예수 믿는 사람이 너의 동리에 있니?"

   "많아요. 여기도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요."

   "오, 그래?"

   예수 믿는 사람은 도처에 많거니와 너를 긍휼히 여길 신자는 없었구나.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다만 자기의 욕심만 위하여 믿는 체 하는 현대 교인아, 너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여관 주인이 문을 연다. 이는 주인집 아이가 내가 걸아 데리고 들어옴을 보고 들어가서 알렸기 때문이다. 떡국 한 그릇을 시켜오라고 하고 나는 조금 미안을 느꼈다. 이는 걸아로 인하여 여관 명예와 이불을 더럽히는 줄로 주인이 생각한 줄을 내가 짐작한 까닭이다. 그러기에 나는 나의 두루마기로 그 아이의 몸을 싸고 그 위에 포대로 덮었던 것이다. 아, 세상이 악하여 이익만 탐하고 명성만 구하였으니 어찌 의를 알며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오, 악한 세대야, 너희는 먼저 의와 사랑을 구할지어다.

   "언제부터 얻어먹었니?"

   "재작년부터요."

   "아, 여섯 살부터 얻어먹었구나."

   "아버지하고 둘이 얻어먹다가 작년에 아버지는 미쳐서 내빼고 나혼자 얻어 먹어요."

   '오호, 악한 세대여, 너희는 마땅히 회개할지어다. 너희의 말로(末路)는 이같이 되리니!'

   여관이 부탁하여 물을 끓여다가 걸아의 얼굴과 수족을 씻기고 얼어터진 발가락을 헝겊으로 처맨 것을 끄르고 씻기고 '빅쓰'를 발라 줄새, 나의 연휼(憐恤)이 극하여 눈물이 쏟아졌다. 울면서 씻어주고 싸맨 후 나의 입던 내의와 저고리를 입혀주고 양말을 신기고 버선을 덧 신겨 줄 새 아, 이는 걸아가 아니요, 아자(我子)요, 애아(愛兒)인 느낌이 일어나도다. 그러나 저에게 맞는 것으로 입혀 주지 못하고, 나의 입었던 헌 것, 큰 것을 억지로 입히며, 주님을 이리도 소홀이 대접한다는 감이 끓어올라 적이 민망하였다. 주인마누라가 들여다보더니 "버섯이 어찌 큰지 장화 신은 것 같구나" 하고 웃고 가는 지라.

   저녁밥을 같이 먹고 밤에 같이 자다. 의복을 새로 만들어 달라고 전도사에게 부탁했더니 아직 안 가져왔구나. 나의 옆에서 자는 더벅머리를 보니 이는 꼭 양과 같았다. 이는 나의 양이었던가. 아,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양아. 굶주림과 추위에 울며 거리에서 방황하던 고양(孤羊)을 찾았노라.


   오 주여, 나는 참 목자 노릇하기 어렵사옵니다. 내가 이 어린 것을 어이 하오리까, 주여, 나를 도우사 이 어린 것을 도울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얼굴에 미소가 나타나고 그의 입은 평화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나의 마음은 기쁨이 가득하였도다. 저의 울음은 나의 울음이었고 저의 웃음은 나의 웃음이었도다. 오 네가 울어 내가 울었고, 네가 웃어 내가 웃었으니 이 어인 인연인고. 이것이 과연 목자와 양의 인연이었었는가.

   저녁 예배에 최석주 형의 선한 목자에 대한 설교가 있었다. 요새 나의 심령은 어찌하여 설교와 기도의 힘을 잃었는가. 너무 추워서 그럼인가.


   오 주여, 나는 이렇게 약한 인생이로소이다. 조금 추워도 견딜 수 없고 조금만 더워도 견딜 수 없나이다. 과연 주님은 위대하셨나이다. 그 기한(飢寒)을 어찌 참으셨나이까. 나는 과연 주의 뒤를 따라가기 부족한 자식이로소이다. 오 주여, 저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1931년 1월 10일 (토) 몹시 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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