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표준 재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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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5-23 23:52 조회5,40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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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鐵源)에 갈 예정
우리들은 먼저 생활 표준부터 아주 낮은 것으로 해야 될 것을 한번 더 깊이 느끼다.
세상의 표준을 그냥 따라가려는 우리의 심령은 너무나 철없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 전체에서 예수를 드러내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930년 1월 7일 (화)
1.
25개국에서 11년을 보내게 된 뒤의 결론은, 하루 세 끼 먹을 수 있고 수도꼭지가 있으며 따뜻한 물이 나오고 잘 때 이빨이 달그락거리지 않는다면, 세계적 기준에서 볼 때 중상류층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생활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기를 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존재의 이유와 생의 목적이다.이도 어느 선까지는 필요하겠다. 단, 인간의 '더'는 '다'에 이를 때까지 '~도', '~도' 하다 졸도하는 법.
끝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끝없이 높아지거나 한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삶이 세상의 별수 없는 한계라면 반면에 기독교는 이르기를,
"생활 표준부터 아주 낮은 것으로 하라!"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조건들 ㅡ 앞서 본 세계적 표준의 '중상류층'의 삶인 하루 세 끼, 입을 옷, 겨울 온수, 비 안 새는 지붕 등 ㅡ 이 갖추어지면, 거기서 만족해야 한다(딤전6:6~9). 그것을 넘어 남는 것들은 이웃을 위해 쓸 것들이다. 이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다(히13:16). 주 예수를 드러내는 생활의 예배요 복음증거다.
2.
나라를 빼앗겼던 이용도 때의 생활고는 오늘날 입이 떡 벌어지는 빈곤한 선교지의 고난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날까지 한국은 세계 8위의 무역규모 경제를 건설했고 더 높은 생활수준을 향한 끝없는 욕망과 불안한 상상과 심지어 야비한 추구까지 토닥여주고 있다. 끝 모르는 욕심을 가진 인간의 본성을 술술 따라, 생활수준의 향상이란 '땅의 천국'을 향해 휙휙 질주하는 한국. 사회는 냉각되고 개인은 소외된다.
기독교인은 배우는 것 따로 사는 것 따로 ㅡ 낮아짐이 높아짐이라 배우고 높아짐을 높아짐으로 산다ㅡ의, 이중인격을 넘나든다. 그래서 위선의 존재를 자처한다.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세상의 신에게 자기를 바쳐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한다.
지독히 가난하던 시절 이용도는, 더 낮아지고자 했다. 우리는 상당히 풍요로운 시절, 이것도 만족이 안 된다고 더 높여라 아우성이다. 우리야말로 "생활표준부터 아주 낮은 것으로 해야 될 필요"가 있겠다. 비싼 인생 떼어 선교지에 가 고개 숙여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주님, 우리에게 주어진 풍요는 공짜가 아닙니다. 주님 앞에서 책임을 지게 될 풍요입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 하셨사오니, 현대 한국인은 두려운 마음으로 받은 것을 이웃을 위해 쓰게 도우소서. 그래서 주의 다시 오심이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두근거림의 날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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