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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 집안의 아들 회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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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5-21 00:19 조회5,5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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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교회에 처음 나간 것은 1930년 1월 첫 주간(1929. 12. 30 ~ 1930. 1. 5일까지)이다. 그때 우리 서면 동네의 예수쟁이들이 날 보고 하는 말이, "서울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성회를 인도하시는데 한번만 가보자!"고 하는 바람에 저녁에 몇 명이 떼 지어서 이갯잿배기를 넘어서 이개의 중앙교회에 가서 집회에 참석하였다. 이 목사님은 검은 두루마기 차림이었는데 굉장히 열정적이었으며 한참을 기도하다가 한참을 찬송하다가 한참을 설교했다. 어쩌면 저렇게 현하지변(懸河之辯)일까? 그 설교에 매료되어 어느덧 구경삼아 갔던 내가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하게 되었고 나의 두 눈에서도 어느덧 눈물이 주르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여! 죄인이로소이다!"

   내가 이용도 목사 집회에서 은혜 받을 때 같은 주간에 덕적 북리 출신 김광우 목사도 그때 은혜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는데, 김광우 목사는 그때 당시 나이가 20세가 넘은 청년 때라서 이용도 목사와 계속적인 편지왕래도 하며 신앙의 지도를 받아 나갔고, 나는 14세 소년시절이어서 더 이상의 관계는 없었으나, 나는 그때 처음으로 교회 나가서 은혜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결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양반집에 집안 망칠 놈 생겼다!" "호적 갈라서 내 보내라!" "대문 안에 발도 못 들여 놓게 하라!"는 등 아버님의 엄한 꾸지람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문은 주님께로 열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 해 4월 첫 주에 내 발로 스스로 회룡동에 있는 우포(友浦)교회에 나가서 교회에 등록하고 기독교도로써의 발걸음을 정식으로 내디디게 되었으며, 그 후로 수많은 핍박과 불호령이 있었고, 회초리가 수없이 부러져 나가고, 집에 못 들어가고 문밖에서 새우잠자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그날부터 오늘까지 일편단심(一片丹心) 외길을 변함없이 걸어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수에게 미쳐서 돌아다니니 집안 어른들의 핍박이 말이 아니었다.

   "유(儒)학자 잡안에 가문 망칠 놈 생겼다."

   "사또 집안에서 이게 무슨 꼴이냐?"

   "저 놈을 호적 갈라서 내쫓아라!" 핍박이 극심하였다.

   하루는 그날이 주일이었는데 마침 그날 또한 시사(時祀)날이었다. 시사 지낸다고 대소가(大小家) 일가들이 모두 모였다. 나는 슬그머니 회룡동 예배당으로 내빼버렸다. 내가 교회로 예배 드리러 간 것을 뒤늦게 알고 예배당으로 나를 잡으러 사람을 보냈다.

   나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허배(虛拜)를 할 수 없다"고 말하고는 주일 예배를 다 드리고 교회에서 맡은 일을 다 끝낸 후에야 집으로 달아갔다. 집안이 술렁거렸다.

   집안 어른들이 모두 모여서 나를 견책하기 위해서 문중회의를 열고 모여 있었다. 물론 아버님도 몹시 화가 나셔서 노발대발하고 계셨다.

   "우선 이 놈의 종아리부터 쳐라!" 불호령이 떨어졌다.

   "예수 안 믿겠다고 항복할 때까지 마구 쳐라!"

   예수쟁이 뿌리를 뽑아버릴 작정이셨던 모양이다.

   주님의 고난에야 감히 비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종아리를 걷고 마루 한 귀퉁이에 올라셨다.

   나는 입을 열어 한 말씀만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예수 믿는 것은 조상을 몰라보고 불효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오히려 바른 효성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뭣이, 어쩌고 어째? 저 놈을 종아리채로 편달하라!"

   그때 큰 형님이 나섰다.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일가 어른님들! 제 아우 지섭의 종아리를 치기 전에 먼저 맏이 되는 제 종아리부터 편달하옵소서! 잘못은 이 아우에게 있는 것이 아니오라, 제게 있습니다."

   인자하신 우리 큰 형님은 예수에게 미쳐 돌아다니는 동생의 매를 대신 맞겠다고 종아리를 걷고 마루끝으로 나섰다.

   "지섭이가 교회 나가게 된 것은 사실 제가 다 시켜서 된 일입니다. 제가 옛 경서(經書)는 읽었으나 요즘 세상 돌아가는 세태를 보니, 앞으로의 세상은 구학(舊學)이나 읽고 양반 상놈 타령만 하고 앉아 있을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생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맏아들이니 가통을 계승하고 끝까지 유맥(儒脈)을 유지할 것이로되 동생들은 신(新)학문도 배우고 예수교도 믿어서 동서양 학문을 널리 터득하여 새 세상에 유용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이오니 잘못이 있다면 제게 있습니다. 제게 벌을 내리소서!"

   큰 형님의 읍소에 준엄하던 분위기를 좀 누그러지기는 하였어도, 그 후로도 집안에서의 예수님과 유교와의 갈등은 오랜 기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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