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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가을밤 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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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0-21 23:43 조회5,5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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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어느 가을밤 변종호는 이용도를 따라 산기도 길에 오른다.

 

   밤이면 밤마다 산에 나가셔서 이튿날 아침 밝은 후에야 돌아오심을 보고 나는 한번 따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름이 지난 가을 밤, 기울기 시작하는 달빛을 구름이 가렸다. 차라리 달빛이 없는 어스름한 밤이었다. 목사님이 주섬주섬 산에 가시려고 나선다. 나도 따라 일어서며 "오늘은 나도 가겠어요" 하고 말했다.

   대문을 나선 우리는 험한 비탈과 깊은 골짜기를 몇 번이나 넘고 건넜다. 이윽고 한강의 마포방면이 환하게 보이는 큰 바위에 이르렀다. 아마 이 바위가 오늘 저녁의 기도자리인 모양이었다. 목사님이 그 바위에 조용히 엎드리신다. 상당히 넓은 바위여서 나도 그 바위 다른 쪽 끝에 엎드렸다. 아니 엎드렸다기 보다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앉은 셈이었을 것이다. 목사님이 기도를 시작하신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꽤 큰 소리로 기도를 하셨다. 나도 잠깐 기도를 드렸다.

   얼마 후에 나의 기도는 끝났다. 그러나 목사님의 기도는 그냥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곁에서 머리를 숙여 묵상을 하다가는 머리를 들고 어스름한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사님의 기도소리는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며 그냥 계속된다. 1시간, 2시간, 3시간…… 집을 나설 때가 10시경이었으니까 벌써 1시는 넘었을 것이다. 손발이 시려오고 추워서 오금을 펼 수가 없었다. 점점 얼어드는 것 같고 몸은 와들와들 떨렸다. 가을 새벽의 찬바람이 쉬지 않고 바위를 휩쓸며 지나갔다. 나는 목사님이 일어나시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그러나 목사님의 기도소리는 점점 높아가기만 한다.

   마침내 기다리다 못해 나는 일어서고 말았다. 허리가 겨우 펴진다. 혼자 집으로 향했다. 서투른 길을 더듬거리며 집에 왔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었다. 나는 곧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내 눈에는 차가운 바위가 납작 엎드린 목사님의 모습만 자꾸 나타날 뿐이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담요를 하나 들고 다시 산길을 더듬었다.

   목사님은 그냥 그대로 엎드려 기도를 드릴 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서 목사님 잔등에 담요를 덮여 드렸다. 그리고는 곧 다시 돌아왔다.

   이튿날 목사님이 돌아오셨을 때는 조반이 한창일 때였다. 대문이 열리며 목사님의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숨이 답답하고 등에서 땀이 나길래 봤더니 웬 담요가 덮여있지 않겠나. 변 선생이 그랬구먼" 하시며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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