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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보아도 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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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0-16 23:20 조회5,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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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천 제1일

   오후 6시 선천(宣川)착

 

   새벽 5시경까지 은혜를 사모하는 나의 몸은 사리원 서부교회에 있었도다. 별로 이렇다 할 은혜를 느낀 것 없이 피곤한 몸이 그저 고민하였노라. 주여, 나의 약함을 도우시옵소서.

   오후 1시 41분 차로 사리원 출발하니 선천 오후 6시 50분 도착. 하차 하니 출영자들이 나온 모양이나 저희의 눈이 어찌 나를 찾아 만나랴. 저희끼리 서로 찾는 모양.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고 하는 말이 "가만 내가 저 앞에 가는 그럴듯한 이를 보았는데……." 하고 달려간다. 지금까지 나는 저들의 옆에 서 있었으나 나의 남루한 꼴이 저들의 눈에 목사 같지 않았던 까닭으로 알아보지 못하였도다.

   그가 달려가서 붙들고 영접하려던 이는 아주 말쑥한 회색 양복을 입고 구두 신고 가방 든 사람. 그가 "아닙니다"에 "아, 나는 서울서 오시는 손님을 맞으려 나왔는데 실례했습니다" 하고 미안한 얼굴로 돌아선다.

   그렇게 말쑥한 양복에 하이칼라 가방을 들어야 목사로 보는 그 눈이 너절한 회색 두루마기에 굵은 베바지, 고무신 신고 겨울 모자를 그대로 썼으니 어찌 저가 알아보랴. 저들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도다. 하나님은 속을 보시는 하나님인 줄 아직 깨닫지 못하였도다. 그 말을 입으로 외우고 머리로 기억하고 있으되 그 진의는 몰랐도다. 속에 있는 생명을 몰랐으니 그것이 나타날 때에는 어떻게 나오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할 것이었도다.

   세상의 사람은 겉모양을 단장하고 하늘의 사람은 속마음을 장식하건만 저희는 세상의 사람과 같이 겉모양을 단장한 자 중에서 목사를 찾았으니 어찌 하늘에 속한 자를 찾을 수가 있었으리요. 땅의 사람 중에서 하늘의 사람을 만나는 자, 복이 있는 자로다.

   세상이 환영하는 목사가 되자면 나의 마음을 단장하는 시간과 모든 노력을 다 가져다 몸을 단장하는 일과 사교술을 닦는 일에 써야 할지라. 그리고 겉모양으로 보여가지고 꾸미는 생활을 할지라. '있는 것 같되 없는 생활.' 아, 이는 바울이 말한 바 '없는 것 같되 있는 사람'과는 전연 딴 종류의 사람이로다.

 

   선천!

   그 이름은 이미 높은 바 있었다마는 그 실상은 어떤고. 한(一) 일을 보아 모든 일을 가히 짐작할지라. 이는 사업으로의 이름이요, 수효로의 이름이었고 신앙으로의 이름이 아니었구나.

   아, 이 굳고 교만한 선천이요, 목사로부터 평신도까지 다 생명이 죽지 않았는가. 내 마음은 심히 괴롭도다. 선천의 사람들아, 너희가 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실만하도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나는 줄지라. 그러나 나의 그것들이 어찌 너희에게 생명이 되랴.

 

   주여, 저희에게 생명이 되도록 나를 신조(新造)하여 나의 고기를 저희에게 던져 주소서. 나의 피를 뿌리시고…….

 

   정상인 목사를 만나는 위로가 나에게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다 나의 영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도다.

 

   오 주여, 나를 죽이시어서라도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시옵소서. 새벽에 회당에 나가서 기도하려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으니, 오 주여, 연약한 나를 도우소서. 이러고서야 어찌 주의 뜻을 성취할 수 있으오리까.

1931년 8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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