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교를 살찌우는 보고 선교를 피말리는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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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9-08 12:14 조회3,9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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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을 할 수 있으되 보고(報告)는 할 수 없는 자로다. 그런고로 나를 알려면 나의 일을 볼 것이요, 내 보고를 보지 말라.
1931년 3월 24일 (화)
서울 주일학교 연합회 간사 활동에는 보고도 한 중요한 부분이었다. 간사 주제에 '나의 보고'를 보지 말고 '나의 일'을 보라고 한 것은 오늘에도 퍽 대범하게 들린다.
어느 선교사가 파송교회에, "저는 일은 할 수 있지만 보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저를 아시려면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여기 와서 직접 보십시요"라 하면, '그 날로 후원 끊기겠지……' 쓴웃음이 나오는 건 왜일까.
보고의 유익한 좀도 있다. 긴장이 풀어진 사역자의 허리를 조여주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어 마음을 북돋아준다. 보고를 받는 이들은 주님의 일하심을 듣고 주를 찬송하게 된다. 이는 보고가 은혜의 통로가 되어 사랑과 격려를 실어 나른 경우로, 보고의 참 목적이 성취된 것이다.
단, 오늘날처럼 '체계성'이 중요해진 조직시대에는 자칫 보고가 의무적 형식성에 그치게 되고, 사역자가 사역을 통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를 통해 말해야 하는 순서바뀜의 낭패 즉 '보고를 위한 보고'에 시달리기 쉽다. 들려오는 바에 의하면 사역은 초등학생인데 보고는 대학교수, 사역은 강도인데 보고는 공자님도 계시다고.
더 감동적인 보고서를 보내야만 된다는 부담감에 밤마다 매를 맞고 사신다는 선교사시여. 사역 4년 차면 벌써 개척해야 했다는 무언의 손길로 아침마다 머리털이 한 움큼씩 쥐어뜯기신다는, 오ㅡ선교사시여. 용기 가지소서. 대부흥사 용도 목사님도 보고로 적잖이 신경 쓰셔야 했다니.
기도하고 말씀보고 사랑하면 그것이 가장 위대한 보고가 될 터이니, 주님은 먼저 우리의 합당한 생활을 보신 뒤에 또한 합당한 보고를 주실 것입니다. 힘을 내소서. 아멘.14일 토요일에 시작된 사리원 집회에서 이용도는 이틀 만에, 떠나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늘까지 이용도가 느낀 것은 교회가 어딘지 인위적으로 주도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나보다. 마음이 움직이기보다는 머리가 앞서 작동함으로 회개와 신생의 지경에 나아가지 못하고 냉랭하였던 걸까?
1931년 3월 사리원 집회에 대한 기록은 오늘치 일기 밖에 없다. 하지만 [서간집]을 통해 이후 사리원 집회가 어떻게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사리원에서도 크게 일하여주셨음이 분명하다. 이유는, 사리원 집회 이후 용도는 사리원의 성도들과 활발히 서신을 주고받게 되고, 때로 편지의 수신자가 여럿이 한 번에 나오며, "그대들은 나의 '기도의 동무'가 되어지사이다" 등의 표현들이 등장하는 것이 무슨 '사리원기도단'이라도 태동된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용도가 이제부터 사리원 이태순 아주머니에게 보낼 편지는 현재 남아 있는 것만 열셋 통이니, [서간집]에 실린 보낸 편지 수의 10%가 넘는다. 둘의 신앙적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평양의 기도단이 주로 남성에 장로교 청년들이라면, 사리원은 자매들이 좀 더 우세하고 나이 대는 소녀부터 아주머니까지 다양하다. 대한 여기저기로 기도의 불길이 번져나가고 있음을 보는 것은 어찌나 가슴 뛰는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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