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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호가 이용도를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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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8-17 12:21 조회4,8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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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악화된 심령이 어른들에게는 얼마나 위태해 보이고 하나님 보시기에는 얼마나 가련하였을 것인가. 지금에 이르러 생각할 때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일인지……. 그러나 이런 완악한 심령을 주님께서는 결코 버리시지 않고 불쌍히 여기어 드디어 구원의 손길을 펴셨다.

   1931년 2월 하순 경 재령(載寧) 거리는 이상한 소문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정말 그이는 사람이 아니야. 그는 성자야, 아니 성신이야, 예수야, 그는 요한이야" 하는 말이었다.

   당시 예수 믿는 사람이 많기로 이름난 재령의 골목골목에는 어디에서나 이런 수군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하찮은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부모님과 동생들은 교회당엘 가느라고 분주했고 다녀와서는 이런저런 얘기에 밤늦은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소란도 나에게는 관심을 끌만한 일이 되지 못했다.

   이런 소란이 재령 거리를 휩쓸기 시작한 지 10여 일이 지날 무렵 부모님과 동생들은 나를 붙들고 권하기 시작했다.

   "얘야, 이번에 예배당에 가서 은혜 좀 받아라."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쉬지 않고 조르기 시작한다.

   "제발 교회에 좀 가자."

   내 태도는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급기야는 부모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간절히 원하신다.

   "네가 죽을 병에서 살아난 것이 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냐. 그런데 주님을 배반하고 교회엘 안 다녀? 천벌을 받을까 두렵지도 않니?"

   그러나 나의 대답은 부모님의 마음을 뻔히 들여다 보듯 아픈 곳을 찔렀다.

   "그렇다고 해도 요즘 목사란 사람의 입에서 무슨 신통한 소리가 나온단 말입니까?"

   이 말을 들은 부모님과 동생은 몹시 원하였다.

   "글쎄, 그러지 말고 꼭 한 번만 가보자."

   결국 그들의 청에 견디다 못해 한번 나가보기로 작정하고 말았다.

 

   이용도 목사님이 재령에 온 것은 동부교회에 부흥회를 하기 위해 1주일 예정으로 오신 것이었다. 그러나 서부교회의 간절한 청을 뿌리칠 수 없어 다시 1주일 더 계속하기로 하셨다. 내가 교회에 나간 것은 서부교회 부흥회가 시작된 지 닷새째 되는 날, 그러니까 목사님이 재령이 오신 지 12일째 되는 날이었다. 내가 나갔을 때는 아침 예배였다. 일부러 멀찍이 앉기 위해 신장 안쪽에 살짝 들어 앉았다.

   이윽고 강대상을 바라본 나는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저런 사람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한 마디, 두 마디 설교가 진행됨에 따라 내 가슴은 이상하게 울렁거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내 머리가 아찔하게 되었다. 설교가 시작된지 10여 분 후에 나는 완전히 거꾸러져 "오, 목사님!" 하고 목사님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일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때 들었던 설교를 다 기억할 수는 없으나 그 중에 이런 내용의 말이 있었다.

   "벽돌로 담을 쌓고 울긋불긋하게 장식을 해놓은 것이 교회가 아닙니다. 이 예배당을 다 불태워버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라도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 참된 예배를 드려야 그것이 바로 교회올시다."

   "신앙이라, 사랑이라고 하면서도 내용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껍데기와 기관과 조직만 남아가지고 이것이 예수 교회라고 전하면서 남의 귀한 영혼을 해치고 망치고 죽이는 것이 현대 교회가 아닙니까."

   그의 설교는 이렇게 부패한 교회의 내막을 폭로하고 주님의 일꾼들이 직업화되는 것을 여지 없이 공격하고 예수와 십자가를 재인식할 것을 주장하면서 조선기독교의 재출발을 역설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고 말았다. 오늘날의 목사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저렇게 통찰하시는 목사도 이 세상에 있었던가. 나는 경탄할 뿐이었다. 그의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지도 않은 예배당인데도 2,000여 명이나 되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후덥지근한 속에서 나는 헐떡거리고 있었다. 유달리 사람 냄새에 약한 내 머리는 아찔해지고 속은 메스꺼웠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들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1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안타깝게도 목사님이 목이 쉬어서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10여 일 동안을 하루에도 네댓 번씩, 그것도 10여 시간씩 외치는 동안에 절반쯤 쉬어있던 목이 이때가 되어서는 들릴락 말락 하다가 급기야는 말문이 아주 막히고 만 것이었다. 오직 사력을 다해 외쳐보려는 몸부림만이 처절하게 보일 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고 귀에 손을 대고 들어 보려 안간힘을 썼다. 모든 사람들도 침을 삼키며 안타깝게 귀를 기울인다. 나는 무릎을 세워도 보고 곧게 앉아 보기도 하며 벌떡 일어서 보고 몸을 앞으로 굽히고 강대상을 향해 바라보며, 가슴을 졸이고 귀를 기울였으나 단 한마디도 들을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2,000여 명의 졸아드는 가슴과 목을 찢어서라도 한마디를 토하고, 가슴을 깨쳐서라도 외쳐 보려는 단상의 목사님의 결사적인 노력과 최후의 몸부림, 이는 부패한 기독교의 마지막 몸부림 같았고 고민하는 기독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모습과 방불했다. 저렇게도 약하시고 꼭 잠긴 목으로 어째서 저렇게 몸부림을 쳐야 하고 누구 때문에 저래야 한단 말인가. 어느덧 목이 메인 나에게서는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여, 주여, 그 입을 열으사. 내게 하려는 그 말을 들려주소서."

   그러나 그 말소리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목사님의 얼굴은 땀에 번득거를 뿐이고 처절한 몸부림은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앞으로 달려가서 목사님을 끌어안아 내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무릎 위에 누이고 흐르는 땀을 닦아드리고 싶었다. 2,000여 명의 마음들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본 교회 목사와 장로들은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말 소리는 들리지 않은지 오래건만 몸짓은 쉬지 않았다. 금방 쓰러질 것만 같은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최후의 힘까지도 짜내는 듯한 그의 표정은 그러다가 죽더라도 단에서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비상한 결심이 엿보였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차츰 높아가는 흐느낌에 내 가슴은 바싹 졸아들고 입안은 마르기 시작한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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