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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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10-10 18:53 조회5,3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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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영무 수양회에는 이용도의 절친한 동지인 간도의 이호빈 목사도 참석했다. 그때의 일을 들어보자.
용도 군이 간도를 다녀간 이후로 기도해야 된다는 열심이 철저히 강하여져서 그 해 여름에 교역자를 중심으로 29명의 동지가 회령 백천사(白泉寺)에 모이어 산상기도를 한 일이 있었다. 그때에 나도 참석하였는바 또 함남 영무교회에서 용도 군이 집회를 인도한다는 소식이 있음으로 동지 몇 사람과 같이 회령에서 영무로 직행하여 5일간 용도 군의 집회에 참석하였다.
제4일째 되는 날 밤이었다. 저녁 집회를 마치고 얼마 동안 기도하다가 숙소로 돌아왔으니 아마 밤 12시쯤 되었을 때이었다. 동무들은 잠이든 모양이나 나는 잠도 잘 오지 않고 일어나 앉기도 싫고 하여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때에 문밖에서 발걸음이 멈추어지며 "형님, 주무십니까?"고 조용히 부르는 목소리는 분명 용도 군의 음성임을 깨달아 알았다. 나를 찾는 소리임을 알고 대답도 하지 않고 문밖으로 나가니 군이 "저기 좀 갑시다"라는 말 한마디를 남겨놓고는 발걸음을 돌리어 해변 쪽으로 쏜살같이 달아나고 있었다.
20보쯤 앞서서 가던 군이 바닷가 모래 위에 주저앉는 모양이 달 밑에 보였다. 궁금증 나는 가슴을 조금 풀며 나도 그 옆에 주저앉았다. 군이 모래 위에 꿇어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나도 꿇어 엎드렸다. 멀리 은혜를 사모하여 따라 나온 나에게 특별한 기도를 해주려고 나를 데려 왔는가 하는 안심과 만족을 느끼면서 정성스럽게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한 15분간 고요히 엎드려 있노라니 군의 말이 나더러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주님 앞에 의탁하여 사정을 고하는 일이었으니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너무도 뜻밖에 되는 일이라 선뜻 기도가 나오지를 아니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날 밤은 그 바닷가에서 이야기로 기도로 밝혔다. 자기의 은혜 받은 경험담이며 각처에서 이상한 큰 역사를 보던 이야기며 장래 우리들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말하는 등 시간이 가는 것을 잊을 만큼 긴장한 가운데서 주고 받았다. 실상은 나는 듣기만 하였다. 원래 빠른 말세를 가지고 밤새도록 쏟아 놓은 이야기라 기록하기 불가능할 정도였다. 수 년 간 입다물고 내놓지 않던 말을 전부 쏟아 놓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잘 기억되는 일 두어 가지만 간단하게 써보겠다.
① 부흥목사가 절대로 자기의 원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였다. 자기의 진정한 소원은 종교교육사업이었는데 웬일인지 자기도 알지 못하게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이 끌리어 다닌다고 하는 말을 나는 유심히 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강단에서 현 교역자를 너무나 지나치게 공박한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평을 듣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나 중심으로 남을 공격하려는 생각을 가져본 일은 절대로 없고 가끔 그런 일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도 드리고 있는데 웬일인지 강단에 나서면 자기도 깨달아 알 수 없는 말을 말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설교에 대해서 말하기를 설교의 원고를 써가지고 나가는 일은 끊긴지가 오래라고 하고 물론 맨손으로 나선다는 일에 큰 실패가 많은 것도 사실이나 실상은 빈 그릇으로 강단 위에 엎드려 울며 졸라 얻어지는 설교가 사람 지각 위에 뛰어나게 되고 승리를 가져오게 되더라고. 그래서 자기의 경험으로 큰 실패를 여러 번 당하였는데도 빈 그릇을 가지고 조르다가 주시는 것이 없을 때는 회중을 그냥 돌려보내는 일도 여러 번 있었노라고.
이런 일 등 몇 가지 이야기를 종합하여 보면 군이 얼마나 솔직하게 순종하는 생활을 원하며 지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성능(聖能)의 힘에 붙들린 생활로 괴로우나 즐거우나 원하는 일이나 원치 않는 일이나 주께 맡기고 십자가에 죽어지는 생활로 지내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신자는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하겠지만 더욱이 교역자의 생활은 더욱 그래야 할 것을 느꼈다. 성능(聖能)에 붙들리어 일터에 나서야 할 것이며 설교는 주님의 명령을 그대로 전하여야 할 것이며 성역은 자기 뜻으로 택할 것이 아니며 설교는 자기의 말로써 토해낼 것이 못 된다. 자기도 알지 못하게 성신의 힘의 불림을 당하는 그때가 가장 큰 역사를 감당하는 때라는 것이었다.
② 수도원 같은 기관을 허락해 달라는 기도를 그날부터 시작하기로 약속하였다. 수년 전부터 계획하고 가끔 논의하던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을 위하여 매일 기도로 주 앞에 조르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매일 한 번 이상 그 일을 위해 기도하기로 하였다. 구도자들이 모여 육을 위한 노동을 할 수 있고 심령을 위하여는 기도할 수 있는 기관을 두자는 것이었다. 전도자들도 가슴에 불이 식어지거든 들어와 엎드려 기도하다가 다시 불이 생기거든 뛰쳐나와 외칠 수 있도록 조용한 곳에 자리를 정하여 집과 땅을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현대식 신학교도 아니고 또 수도원도 아닌 그 어떤 것으로, 성경 읽고 기도하고 노동함으로 육과 아울러 심령의 훈련을 받다가 주님의 명령이 가슴에 떨어지거든 누가 오라거나 말거나 뛰어나서지 않을 수 없는 불타는 가슴을 가지고 사람의 거리로 나서게 하자는 것이다. 또 고요한 기도의 처소를 갈구하는 자를 위하여 하루바삐 그러한 기관을 만들기 위하여 기도하자고 하였다.
어느덧 동이 트고 동해에 불을 켜 들고 올라오는 햇발을 보면서 아래와 같은 기도를 드리고 그 자리를 떠나 숙소로 돌아왔다.
"지난 밤 저희 두 형제가 주고 받은 이야기 가운데 불필요한 것이 있사옵거든 남김없이 거두어 주시옵고 만일에 주의 뜻에 합당한 부분이 있사옵거든 저희의 생명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저희가 원하여 조르는 일이 주님의 뜻에 합하는 일이옵거든 속히 이루어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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