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남본정교회 집회 간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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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4-30 11:55 조회5,0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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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용도의 해주 집회에 가기 위하여 고생한 성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번에는 해주 집회 중에 은혜를 받은 성도들의 간증을 들어보자.
성령의 역사_ 서광숙
똑똑한 탓인지, 덜된 탓인지, 나는 예수 믿기를 즐겨 하지 않았다. 그러나 험한 세상에서 신상에 여러 가지 불행이 닥쳐오고 내리누르게 되자 어찌된 셈인지 내 입에서도 "아이고 하나님" 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처음 믿던 그때를 회고하면 나의 얼굴은 붉어지고 나 스스로를 향하여 멸시의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볼까 두려워 살살 예배당으로 몰래 찾아다니는 나는 가장 작은 성경 찬송을 손바닥 속에 꼭 쓸어넣기에 힘썼으며 사람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뒤에 감추며 옷자락에 감추는 등 무용한 고심을 정성되게 하였다. 남들은 기도를 울어가며 손뼉을 쳐가며 해내건만 나는 그렇게 야단치며 할 기도거리가 없었다.
내게 죄가 있다는 것은 암만 연구를 해도 찾아낼 수가 없고 그저 한다는 기도가 "첫째로 두 아이를 잘 기르게 하옵시고, 둘째로 내 땅이 수리조합 구역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셋째로 끝까지 무사히 수절하게 하소서" 하는 것들이었다. 교회에서 떠들어대는 죄책감은 암만해도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정식으로 교인되는 것도 살살 피해가며 그저 어름어름 예배당에 왔다 갔다 하며 눈치나 보고 바람이나 쏘이려다니는 것이 그때의 내 신앙 상태의 거짓 없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믿어 오는 차에 하루는 친구 OO가 와서 어떤 유명한 목사가 왔으니 함께 예배당에 가자고 조른다. 그러나 주일날에나 한 번 겨우 나가는 나의 믿음으로는 그런 회에 참례하고 싶지를 않았다. 그래서 토요일 밤부터 그 목사의 집회가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주일 낮에야 겨우 참석하게 되었다. 주일 낮에 에배당에 가서 그 목사의 말을 몇 마디 들은 나는 웬일인지 도무지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내 머리에서 내리누르는 죄 덩어리 때문에 그저 엎드려 우는 수밖에 머리를 들 수도 없고 다른 생각을 할 여가도 없다.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나도 알 수 없게 내 마음 속의 한쪽 담이 무너진 모양이다. 그저 섧고 그저 눈물, 그저 아프고 그저 안타까워 그날은 밥도 못 먹고 밤에 잠도 한잠 못 잤다.
잠도 깊이 들지 않아 고민하는 나는 새벽예배에나 나가고 싶으나 평생에 밤중에는 대문 밖에 나가보지 못한 나는 그런 모험은 해볼 생각도 낼 수 없다. 그런데 흐릿하게 잠이 들었던지 내게 꿈이 나타났다. 어제 그 목사가 내 머리에 안수를 하시며 "너는 어째서 빈 방에서 잠만 자느냐?"고 하시는 것이다. 그 꿈에서 깨니 예배당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때 회당에 가기로 결심하고서 대문을 열고 한걸음 나서니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무섭게 생긴 키가 9척이나 되는 악마인지 도깨비인지 굉장한 괴물이 내 앞에 나타나 내 길을 꽉 막아선다. 나는 "으악" 소리를 치고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이를 악물고 그 자리에서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하고 나니 그 괴물은 없어졌다. 마음도 진정됨으로 나는 용기를 내어서 예배당으로 달음질쳤다.
예배당에 들어서니 그 열변, 그 웅변이 바로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미치고 울고 나는 통회하고 또 통회하여 내 눈은 퉁퉁 붓고 내 얼굴도 부었다. 이때부터 아침저녁으로 낮으로 밤으로 그의 집회를 미친 듯이 찾아 다녔다.
그때에 그렇게 미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옛날의 어떤 의식은 아직도 좀 남아있어서 근처나 세상의 눈과 입이 두려워 내 체면을 차리고 내 면목을 유지하여야 된다는 생각은 똑똑하였다. 그래서 제 때에 밥 지어 먹는 것과 집의 안팎을 깨끗이 치우는 데는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생각과 정신은 온통 예배당에 다 가있는 나는 전에는 그렇게 오래고 지루하던 밥 한 끼 짓는 것이 그때에는 1분이나 2분밖에 안 걸리는 것 같았다. 어서 예배당에 가서 앉으려는 욕심은 방에 걸레 치고 안팎 뜰 쓸기에도 최대의 열을 내었다.
전에는 30~40분이나 1시간만 앉아 있어도 싫증이 나고 졸음이 오던 그 예배당이 이제는 그냥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예배당에 가 앉아있고 싶으리만치 교회가 그리워지고 그 자리가 좋았다. 그의 찬송, 그의 기도, 그의 설교, 나는 그의 그 어느 것에라도 감격되지 않은 바가 없고 감동되지 않은 바가 없다. 그러나 지금 그 어느 것도 말로나 글로써 표현하기 어려우니 안타깝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귀에 쟁쟁하고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말을 한두 마디로 말하려면 그것은 할 수가 있다.
① 건수(乾水)가 되지 말고 생수가 되라. 소나기가 멎은 후에 돌챙이로 졸졸 흐르는 건수는 몇 시간이 못 되어 말라버리고 마나, 든든한 샘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는 해가 나거나 비가 오거나 밤에나 낮에나 끊임없이 쉼 없이 영원히 흘러나오며 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 따스하여 사람을 기르고 사람을 살리나니 우리는 생수가 되어야 하겠다.
② 덮어 놓은 우물이 되라. 우물은 열어 놓으면 티끌, 먼지 나뭇잎, 검부러기 같은 것이 날라 들어가고 새똥, 말똥 등 더라운 것이 그 속으로 들어가니 우물은 덮어두어야 된다. 우리는 우리의 우물을 잘 건사하고 꼭 덮어두어서 정한 물을 꼭 주님에게만 드리도록 하자.
이 목사님의 모든 설교와 기도는 오직 나 한 사람을 붙들어다 놓고서 내 가슴 속을 시시콜콜히 그려내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의 모든 말, 모든 기도는 그저 내 가슴을 쿡쿡 찌르고 쪽쪽 쪼개내었다. 특히 꽈바리 예수교인이 조그만 성경책을 손바닥에 깊이 숨겨가지고 살금살금 사람 없는 모퉁이를 골라가며 예배당에 찾아다닌다는 설명에는 나는 땅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으리만치 부끄러워지고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1주일 동안의 집회는 꿈결같이 끝나고 목사님이 가시는 날이 왔다. 목사님이 해주를 떠나시는 날의 섭섭함과 애끓던 가슴을 어찌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으리오. 그저 나는 눈물을 흘렸다. 흘리고 또 흘렸다.
그리고 목사님이 가신 그날 바로 나는 성경책 넣는 커다란 책 자루 셋을 만들었다. 그 하나는 친구에게 주고 둘은 내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전에는 작은 성경 찬송이 남이 볼까 겁이 나더니 이제는 제일 큰 성경 찬송을 그 자루에 넣어서 들고 나서지 않으면 예배당에 가는 것 같지 않게 생각된다. 그리고 이제는 책 자루라는 생각보다 밥 자루로 생각된다.
그 책 자루를 손에 들게 된 때부터 비로소 십자가의 군병이라는 자부심과 용기가 생겨 새벽기도회에도 안심하고 담대하게 잘 다니고 있다. 밤 2시나 3시에 예배당에 가다가 순사의 구두 소리, 칼자루 소리가 날 때에도 책 자루를 앞으로 가져다가 두 손으로 합하여 들면 문제가 없어진다. 도적이나 마귀를 만난대도 겁이 나지 않는다. 십자가 군병의 무기, 성경책 자루면 못 당해낼 것이 없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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