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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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2-03 22:56 조회5,4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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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씨에게
신의 섭리대로 이루어짐이 우리의 바라는 바였으니 편불간(便不間), 생사간, 전체를 주님께 의탁하고 정숙한 생활의 때를 보낼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 학부라고도 할 만한 곳은 병실인 줄 압니다. 실로 다른 데서 배울 수 없는 진리 ㅡ 이는 인생이 마땅히 가질 바 진리이면서도 잘 소유하기 어려운 그 진리를 병석에서만 얻을 수 있는 까닭에 그렇습니다.
친애하는 이여, 주님이 어느 때보다 크게 친히 임하셔서 계신 때인즉 그를 붙드소서. 그리고 그의 품에 깊이 안기소서. 주님의 형상과 그 음성이 반드시 자매의 영에 큰 활력을 주시리이다.
자매여, 그대는 그대의 병을 기뻐할 수 있나이까? 만일 거기서 감사와 기쁨을 가질 수 잇다면 자매는 진실로 구원을 얻은 성녀요, 병석에 있어 몸은 불우에 처해 있을지라도 자매는 영으로 하늘의(天的) 생활을 하는 하늘의 사람일 것입니다.
이제야 바야흐로 자매가 신앙하여온 바 모든 교리와 신조가 생명적으로 자매에게 움직이고 있었는지, 죽은 껍데기만, 공리공론(空理空論)만 머리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시험해볼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믿습니다.
과연 자매의 소신대로 영적 구원이 자매에게 있어 온 천하보다 이를 기뻐함이 사실인가? 천국의 삶이란 것이 과연 자매의 심령 내에 있어 이를 위하여는 내적, 물적, 지상적, 현세적 모든 환난과 번영을 초개같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인지?
자매가 일상 기도하고 그대로 되기를 바라던 바와 같이, '주를 얻기 위하여', '주와 같이 있기 위하여', '죽든지 살든지 병들든지 성하든지……'하던 것은 일상 자매의 영의 솔직한 절규이었던지?
또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사업 많이 하려는 욕심도 아니요, 다만 참되게 주와 같이 있어 하루의 생활을 잘 하려는 것을 의미있게 여긴다던 것은 과연 진정한 소원이었던가, 일종 부세(浮世)의 허풍이었던가!
이 모ㅡ든 점에 있어서 자매의 과거의 부르짖음과 모든 표현의 진실성을 재검할 때는 돌아왔나이다.
만일 자매가 지금 충분히 영으로 진리를 타고 하늘에 살기를 공중의 새와 같이 물속의 고기와 같이 십분(十分) 자유스러워, 무슨 빈궁이나 병고나 칼이나 위험을 당하든지 그리고 또 죽음의 그물로 육의 부자유는 있다고 할지라도 영의 부자유를 느끼는 일이 없다고 하면,
오ㅡ 친애하는 자매여! 그대는 다ㅡ 이루었나이다. 그대의 완성의 날은 벌써 왔으니 왜 아니 축하하오리까! 오, 친애하는 이여, 진실된 신앙에 사소서. 하늘에 사는 영의 사람이 되소서. 병고나 빈곤이나 그외 무엇이든지가 일절 침범치 못하는 하늘에서 영으로 사소서. 하늘은 사후에 있을 바 신자의 환경만이 아니요, 또는 손가락으로 지칭할 수 있는 저 하늘이 아니외다.
저를 믿는 자가 살아서 맛볼 수 있는 영계의 총칭이요, 몸 밖의 하늘이 아니외다. 마음 안의 영대(靈臺)인 것을 잊지 마소서.
자매여! 나는 다시 자매에게 한 문제를 시험하니 허물치 마소서.
자매는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시나요. 사랑하신다면 자매가 비난할 수 있던 근대교회류(流)의 신자들보다 얼마나 더 주님을 사랑하시나요. 아니, 넓게는 그만두고 일반 신학생들보다 얼마나 더 주님을 사랑했나요?
이는 곧 주께서 자매에게 베푸는 질문이었으니 고요히 주님께 대답하소서.
오ㅡ 자매여! 나의 친애하는 천국의 동행자여! 영의 동무인 신앙의 형제여! 그대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시나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는 어떠한 나를 사랑하느냐
어떠한 자가 네가 사랑하던 주였는지
나는 알고자 하노라!
영광의 주? 부유의 주? 권세의 주?
장수의 주? 화락(和樂)한 가정의 호주로서의 주?
어떠한 주님을 너는 사랑하느냐!
나에게는 일찍 영광도 없었으며
권세도 없었으며 부유도 없었고
처자와 가정도 없었고 건강도 없었던 것 아니냐?
장수! 그것도 내게는 물론 없었다.
너는 나의 무엇을 보고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어떻게 알았느냐
무엇을 알았느냐?
만일 이상의 것을 나의 것으로 알아
그것으로 인하여 나를 사랑하였다고 하면
너는 나를 충분히 오해하였느니라!
나는 천동(賤童)으로 태어나서 빈궁의 사람
무식의 노동자 무명의 종교가
무의무가(無依無家)한 고아로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자리 삼아
남들의 반생(半生)을 겨우 일생으로 살고
마침내 겉옷, 속옷조차 빼앗기고
참형(慘刑)으로 종신(終身)한 내가 아니냐!
정일아,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이러한 나를 진실로 사랑 하느냐?
나의 빈천(貧賤), 나의 무명, 나의 수욕,
나의 고독, 나의 단생(短生), 나의 가진 육고(肉苦),
이것을 네가 진실로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너는 빈궁과 고독에 있을 때 이를 슬퍼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환영하리라. 왜?
그 가운데서 나의 형상, 곧 너의 사랑하는 주님의 형상을 찾아 볼 수 있음으로!
네가 만일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면 너는 모든 불우와 육고에서 찬미하리라. 이는 그 가운데서 나의 승리의 장거(壯擧)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니깐!
나는 너를 위하여 이 모ㅡ든 것을 다 당하였노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마시던 잔을 네가 받아
너는 십분 즐거워할 것이 아니냐!
네가 만일 나를 사랑할진대 나의 마시던 쓴 잔을 마시어 너는 온전히 기뻐하라. 나의 사랑하는 자는 마땅히 나의 잔을 마시어 기뻐하는 자가 아니면 아니 되느니라.
나를 사랑하노라고 하는 자, 그 얼마나 많으며
나의 고난을 몸소 맛보는 자, 그 얼마나 적음이여!
세상이 다ㅡ 나를 사랑함이 아니라 나의 영광과 안일(安逸)을 사랑함이었도다!
나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고난의 잔을 마시어 충분히 감사하는 자니라.
오ㅡ 나의 가련한 작은 종자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마시던 잔을 마시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잔을 마시어
나의 완성을 부르짖어 찬미하라
너의 살과 뼈가 나의 십자가의 고통을 맛보아 너에게는 더 없는 영광이니라.
네가 "몸소 받는 고생도 알게 하옵소서"하고 노래로 부르짖어 외치나,
그러나 몸이 나의 고난을 당하지 않고 어찌
나의 몸소 받은 고생을 알 길이 있으랴!
오ㅡ내 사랑하는 작은 종아
너는 이제 가장 나를 잘 배울 기회에 있음을 기뻐하라
오ㅡ나의 사랑하는 소자야
이는 하늘의 너에게 주신 사랑의 선물임을 기억하라
1932년 5월 26일
시무언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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