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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교단에서 공식 규정한 44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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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09-28 22:48 조회1,8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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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교단에서 공식 규정한 44개 목록 

 

                                 [2006년 10월 현재]  / 장운철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규정한 이단(성), 사이비(성) 문제 단체(개인 또는 사상) 등을 종합했다. 주요 교단들은 대체로 매년 9월에 정기 총회를 개최한다. 이때 한 해 동안 연구해왔던 이단 또는 문제 단체들의 내용을 보고하고 결의하게 된다. 2006년 10월 현재까지 총 44개 단체(또는 개인)가 공식 규정된 상태다. 다음은 어느 교단들에서 언제(총회 회기), 어떠한 내용으로 어떤 단체를 규정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이다. 

 

지난 해 목록에 비해서 1개의 항목이 늘었다. 예장 고신 교단에서 독자적으로 연구 발표한 주종철 목사(주안교회)에 대한 ‘이단성’ 결의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그외의 결의된 내용들은 이미 다른 교단에서 연구 발표한 내용에 대해 추가 보완된 것이다. ‘가계저주론 사이비성 농후, 금지’(통합), ‘예수왕권선교회 이단성 농후, 금지’(합동, 합신 - ‘참여금지’), ‘뜨레스 디아스 엄히 경계’(합동), ‘전태식 목사(청원진주초대교회) 집회 참여금지’(고신) 등이 금년에 주요 교단에서 연구 발표한 내용들이다. 

 

통합측이 33개로 가장 많은 연구 결과물을 발표했다. 그 뒤를 이어 고신과 합신 그리고 합동측이 각각 23, 20, 20개씩 연구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기독교한국침례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등도 상당수 연구 결과를 냈다. 이재록 씨(만민중앙교회)를 이단(1999년)으로 규정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활동도 계속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한편, 합동총회는 금년(2006) 최삼경 목사(빛과소금교회)의 삼위일체관 등에 대해 ‘이단성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총신대 신대원 조직신학과 교수 일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내려진 결론이다. 최 목사 문제는 지난 해 박윤식 씨(평강제일교회 원로목사, 구 대성교회)를 영입하려다 총회에서 커다란 역풍을 맞았던 서북노회(노회장 박충규)가 헌의한 데 따라 조사안건이 되었던 것이다. 이미 통합측도 지난 89회 총회(2004년)에서 “최삼경 목사의 삼위일체관과 성령론에 문제없다”고 공식 결의한 바 있다. 

 

합동정통 총회(총회장 양병희 목사)는 금년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서 이미 규정한 이단, 사이비 및 문제단체들을 그대로 수용, 적극 대처하기로 결의했다. 김학수 목사(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위원장)는 그동안 한국교회 주요 교단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며 합동정통 총회도 한국교회와 보조를 맞추어 나갈 것임을 밝혔다. 대신 총회(총회장 구문회 목사)도 금년 총회를 통해 이단과 교류하는 목회자 제명 등 이단 문제에 강력한 의지를 세우기도 했다. 

 

이번 정리된 목록이 한국교회 문제 단체들을 전부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 단체의 활동이 음성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이단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의 주요 교단 연구 발표 목록만이라도 개교회에서 숙지하고 있다면 피해를 막는 것은 물론, 이단 사이비 문제를 적극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가 있는 사상들은 대체로 반복, 변형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목록에 사용된 주요 교단명 표기는 다음과 같다. 통합→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합동→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합동정통→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정통, 고신→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합신→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기성→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침→기독교한국침례회, 기감→기독교대한감리회,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고려→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 개혁→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기장→기독교장로회. 

 

한국교회 주요 교단 등에서 규정한 문제 단체 종합 목록(2006.10.현재) 단체명 또는 이름 : 연구교단(연도/총회 회기/내용) 

 

1. 가계저주론(이윤호) : 합신(2001/86/위험한 사상), 통합(2006/91/사이비성 농후) 

 

2. 구원파 : 기성(1985/40/이단사이비집단), 고신(1991/41/이단), 통합(1992/77/이단), 합신, 합동 

 

3. 김기동(서울성락교회) : 고신(1991/41/이단), 합동(1991/76/이단), 통합(1992/77/이단), 합신, 기성, 기침(1987년 이단) 

 

4. 나운몽(용문산기도원) : 통합(1955, 1956, 1998/40, 41, 83/이단), 고신 

 

5. 다락방 운동(류광수) : 고신(1995,97/45,47/이단), 통합(1995/80/사이비성), 합동(1996/81/이단), 기성(1997/52/사이비운동), 기감(1998/23/이단), 고려(1995/45/유사기독교운동, 사이비 기독교운동), 개혁, 기침 

 

6. 뜨레스디아스(T.D) : 고신(1992/42/불건전), 통합(1994/80/, 2002/87회/목회자추천받도록), 합동(2006/91/엄히경계) 

 

7. 레마선교회(이명범) : 고신(1992/42/불건전한 단체), 통합(1992/77/이단), 합신, 기성 

 

8. 말씀보존학회(이송오) : 합동(1998/83/이단), 통합(2002/87/반기독교적 주장) 

 

9. 몰몬교 : 합신, 고신, 기성, 기장 

 

10. 박명호(광규, 한농복구회, 구엘리야복음선교원) : 통합(1991/76/이단), 고신, 합동 

 

11. 박무수(부산제일교회) : 기성(1999/54/이단), 통합(1999/84/비성경적, 사이비적) 

 

12. 박윤식(평강제일교회, 구 대성교회) : 통합(1991/76/이단), 합동(1996/81/이단 - 2005/90/이단 재확인) 

 

13. 박주형(새벧엘교회) : 합동(2002/87/강단교류금지-지나친 신비주의, 주관적성경해석문제) 

 

14. 박철수(아시아교회,새생활영성훈련원) : 합동(2000/85/비성경적인 영성사상, 교류금지), 합신(2001/86/위험한 신비주의, 참석금지), 통합(2002/87회/연장연구-2004/89/문제삼지 않기로 함) 

 

15. 밝은빛종말론 : 기성(1988/43/사이비성) 

 

16. 밤빌리아추수꾼 : 통합(1990/75/이단), 고신, 기성(42회/이단) 

 

17. 빈야드 운동 : 통합(1995/81/도입금지), 고신(1996/46/참여금지), 합동(1997/82/참여자, 동조자는 징계), 기성(1998/53/사이비성 있음), 

 

18. 새일파(새일중앙교회) : 기성, 합동 

 

19. 서달석(서울중앙침례교회) : 통합(1993/78/참석엄금) 

 

20. 서울평강교회(곽성률,구장안교회) : 통합(2005/90/이단사이비적 행위), 한기총(2005/이단) 

 

21. 시한부 종말론 : 고신(1991/41/이단), 통합(1991/76/이단), 합신 

 

22. 안상홍 증인회(하나님의 교회 세계선교협회) : 한기총(2000/안식교 계열의 이단, 초교파적 대처), 통합(2002/87회/이단), 합신(2003/88회/이단) 

 

23. 안식교 : 예장총회(1915/4/면직제명), 통합(1994/80/이단), 합신, 고신, 기성, 합동 

 

24. 엄명숙(명인교회) : 통합(2001/86/이단) 

 

25. 여호와의 증인 : 고신, 기성, 기장, 합신 

 

26. 영생교(조희성) : 고신, 합신 

 

27. 예수왕권선교회(회장 심재웅 목사) : 합동(2005/90/사이비이단성 농후, 91회/재확인), 통합(2005/90/이단성, 사이비성 농후), 합신(2006/91/교류 및 참여금지) 

 

28. 예장합동혁신총회(산하 남서울신학교) : 합동(2002/87/이단성-연옥교리 주장 등) 

 

29. 예태해 : 합동(1994/79/이단성혐의), 기장(1996/81/단호 대처), 통합(1999/84/예의주시, 2004/89예의주시 철회) 

 

30. 윤석전(연세중앙교회) : 합신(2000/85/이단 내지 이단성 짙은 주장, 관계금지) 

 

31. 이만희(신천지교회, 시온기독교신학원, 무료성경신학교) : 통합(1995/80/이단), 합동(1995/80/신학적 비판 가치 없는 집단), 기성(1999/54/이단), 고신(2005/55/이단), 합신(2003/88/이단) 

 

32. 이유빈(예수전도협회) : 합동(1999/84/참여금지), 기성(1999/54/경계집단), 합신(2000/85/참여금지), 통합(2001/86/참여금지), 고신(2004/54/공개죄자백금지) 

 

33. 이재록(만민중앙교회) : 한기총(1999/극단적인 신비주의 이단), 통합(1999/84/이단), 합신(2000/85/이단) 

 

34. 이초석(예수중심교회, 구 한국예루살렘교회) : 고신(1991/41/이단), 통합(1991/76/이단), 기성(1994/49/이단), 합신, 합동 

 

35. 이현래(대구교회) : 한기총(2005/이단) 

 

36. 전태식(진주초대교회) : 합동(2005/90/집회참석 금지), 고신(2006/56/참여금지) 

 

37. 정명석(JMS) : 고신(1991/41/이단), 통합(2002/87/이단), 합신, 기성 

 

38. 주종철(주안교회) : 고신(2006/56/이단성) 

 

39. 지방교회 : 고신(1991/41/이단), 통합(1991/76/이단), 합신, 합동 

 

40. 최온유(일산 화정복된교회, 평신도능력극대화 세미나) : 고신(2004/54/참여금지), 합신(2005/90/ 이단성) 

 

41. 크리스천 사이언스 : 기성, 고신, 합동 

 

42. 통일교(문선명) : 고신, 통합, 기성, 기장, 합신 

 

43. 할렐루야 기도원(김계화) : 한기총(2000/이단사상,참여엄금), 통합(1993/78/비성경적, 비기독교적), 합동(1996/81/이단성), 고신 

 

44. 황판금(대복기도원) : 통합(1993/78/사이비집단)

 

          

 * * *[가계저주론]에 대한 예장 통합측 연구보고서

 

[이윤호 목사의 가계저주론]에 대한 예장 통합측 연구보고서 

 

 교회와신앙 

 예장 통합측(총회장 이광선 목사)은 제91회 총회에서 예장 합신측이 '위험한 사상'으로 규정한 이윤호 목사의 가계저주론에 대해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위배됨이 현저하고 사이비성이 농후함으로 책을 읽거나 가르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금해야 한다”는 이단대책위원회의 보고를 그대로 채택했다.<편집자 주> 

 

1. 가계저주론의 배경 

 가계저주론은 1972년 케니스 맥콜이란 미국의 정신과 의사가 처음 주장했으며, 1986년 제이 헴프쉬에 의해 신학적 이론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메릴린 히키(<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 베다니출판사, 1977)와 이윤호의 저서(<가계에 흐르는 저주 이렇게 끊어라>, 베다니출판사, 1999)가 출판되어 국내에 널리 알려졌고 1997년 이후 <빛과소금>, <목회와신학>, <교회와신앙>을 통해 가계저주론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2. 신관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저주로 오해하고, 저주를 저주로 끊는 흑주술(黑呪術)을 주장한다. 이윤호 목사는 “하나님은 유전적인 복과 저주의 법칙을 선포”(92쪽)하였으나 가계의 축복보다 가계의 저주가 더 강하다고 주장한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저주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서 아버지가 자녀의 잘못을 채찍하는 사랑의 징계요 이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는 또 다른 구원과 은혜의 방편임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인용하되 삼사대의 저주만을 굵은 활자로 강조하고 수천대의 은혜는 약화시키며(출 20:4~6 등)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저주의 하나님으로 왜곡시킨다. 

 

그리고 조상들의 죄가 저주가 되어 후손에게 대물림된다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하나님의 영적 원리”(92 쪽)로서 “하나님 자신도 자신이 정한 법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108 쪽)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우주의 법칙에서 자유하므로 죽은 자도 살릴 수 있고 자신이 정한 율법에서 자유하므로 율법을 범한 자일지라도 무조건 용서하시는 절대 자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계저주론은 자신이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주나,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심코 한 말은 자녀를 통해 저주의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104쪽)고 한다. 그리고 메릴린 히키는 마귀와 마귀의 역사를 저주하고, 포르노를 저주하고, 근친상간을 저주하라고 가르친다(159 쪽). 가게에 흐르는 저주는 저주로 끊으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만이 인간의 범죄에 대한 심판의 방법으로 저주하실 수 있는 분으로 가르친다. 그리고 성서는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리요”(민 23:8)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행한 저주는 실제적인 효력이 없다고 가르친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행한 저주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가계의 저주로 실행된다거나, 저주를 저주로 끊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도 하나님처럼 의로운 심판의 저주를 행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전형적인 샤만(black Shaman)의 흑주술(black Masic)로서 비성서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3. 기독론 및 구원론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불완전한 영적 구원으로 제한하고 왜곡한다. 이윤호 목사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든 저주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며”(151 쪽), 신자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영이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요 “조상의 죄 및 저주에서 우리의 혼과 몸은 완전히 해방된 것이 아니다”(132 쪽)고 한다. 

 

이러한 가계저주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영적인 것으로 제한하지만, 예수는 분명히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 3:6)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 3:13). 우리를 심판하실 그리스도께서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류의 모든 저주와 심판을 친히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육의 온전한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저주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불완전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혼과 육신은 세상과 사탄의 공격 및 조상의 죄로 인하여 대물림된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131 쪽)가 있고 그 방식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저주로 끊는 축사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육신과 혼의 구원은 영의 구원과 다른 방식으로 얻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중구원론은 구원론의 왜곡이다. 성경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롬 8:1~2)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이미 영육간에 전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곤고함과 환란과 핍박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고 하였다. 그래서 날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했으며, 저 천국의 완전한 구원을 소망함으로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롬 8:24, 요 5:24)고 하였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내가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안식이 없나이다”고 고백하였다. 

 

따라서 가계저주론은 사죄의 확신과 구원의 기쁨과 천국의 소망을 약화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은 죽고 날마다 새사람으로 사는 복음적인 신앙의 도리를 가계의 저주를 끊는 일시적이고 편협하고 도구적인 미신으로 전락시킨다. 

 

4. 귀신신앙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영적 미혹과 귀신신앙을 부추긴다. 이윤호 목사는 “가계 영들은 세대를 걸쳐 한 가계에 비슷한 감정의 문제, 뇌, 질병 혹은 중독증 등의 문제를 야기”(118 쪽)시키는 ‘영적 쓰레기’라고 한다. 가계의 영은 가문의 영, 성씨의 영 또는 가문귀신 또는, 성씨 귀신(185 쪽)으로도 불리며, 가계에 흐르는 ‘영적 쓰레기’가 이러한 영들을 불러들이므로 이를 제거하면 쥐에 해당하는 악한 영은 무력해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가문 귀신이나 성씨 귀신’은 성서에 없는 표현이며 이러한 귀신을 저주하고 쫓아내어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무당적인 조상귀신 신앙을 부추겨 복음적인 신앙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가문의 영이나 성씨의 영’ 외에도 공유의 영, 복수의 영, 마약의 영, 죽음의 영, 슬픔의 영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잡다한 영들의 존재 역시 성경에도 없는 비기독교 주장히여 이로 인해 영적인 불안감과 영적 미혹에 빠지게 한다. 

 

심지어 개인상담과 기도를 통해 5대 조상의 유밸로 인한 복수의 영이 가계에 흐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28 쪽)고 하는데 본인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5대조 조상의 문제를 알아내는 것은 점쟁이나 복술가의 행동이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들을 가증하게 여긴다고(신 18:9~14) 가르친다. 

 

5. 축사기도문의 문제 

 가계저주론의 축사방법이나 축사기도문은 주술적 유사 주문(呪文)으로 보인다. 이윤호 목사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는 방법으로 조상들의 모든 죄를 공개적으로 대신 회개하거나, 동서남북을 향해 ‘저주받은 귀신아 물러가라’고 축사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가계에 흐르는 그 많은 저주 목록들이 단지 ‘저주받은 귀신아 물러가라’고 인간이 외친다고 그 모든 저주가 실제로 끊어져서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귀신아 물러가라’는 무력한 인간적인 외침에 의존하게 만든다. 

 

가계저주를 끊는 처방으로 제시된 여러 기도문에는 성씨 귀신 등을 ‘대적하노라, 선포하노라, 추방하노라, 금하노라, 명령하노라’(185 쪽) 등등의 명령형의 유사 주문(呪文)이 뒤섞여 있다. 메릴린 히키의 기도문에도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 아버지와 동시에 ‘사탄과 귀신의 세력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악령들이 기도의 대상으로 묘사된다(282~283 쪽). 무엇보다도 이들이 제시한 기도문에는 기도의 대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씨귀신을 비롯한 온갖 악한 영과 귀신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하나님에 대한 간구와 귀신에 대한 저주가 동일한 기도문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 신앙과 귀신 신앙을 혼돈하도록 만들고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보다는 비정상적인 영적 두려움과 미신적 귀신신앙으로 미혹할 우려가 있다. 

 

그리고 저주의 성경에 따라 서로 다른 무수한 기도문을 제시하여 마치 이러한 기도문 처방이 주님이 가르치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합소서”라는 주기도문보다 더 효력이 있는 일종의 유사주문(呪文)과 같이 사용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6. 운명론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인간의 모든 질병과 고통 등을 조상의 탓으로 돌리고, 성서가 가르치는 유익한 고통도 부정하는 운명론이다. 이윤호 목사는 제시하는 가계저주의 목록에는 육체적 정신적 질병, 가난, 실패, 불임, 유산, 가정불화,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문제, 각종 사고, 주술적인 행위, 모든 종류의 중독, 거식과 폭식, 과소비와 낭비벽, 성격장애 등이 포함된다. 메릴린 히키는 안경을 쓴 것(110 쪽)과 딸만 낳는 것도 조상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인간의 여러 고통에는 유전적 기질적 요인과 가정 환경적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모두 조상들의 죄의 결과인 저주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 자연 생태적 환경적 요인과 사회 정치 환경적 요인도 허다하다.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잘못이나 범죄로 인한 것이 더 많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가계저주론은 자신의 잘못을 조상의 탓으로 돌려 운명론을 부추기며, 자신의 죄책을 회피하여 예수께서 요구하신 ‘회개’를 거부하고 오히려 죄악된 생활에 안주하게 한다. 

 

성서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고후 5:17)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계저주론은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인도 과거의 죄, 그것도 조상의 죄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갇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계저주론은 모든 고통을 가계의 저주로 돌리고 성서가 가르치는 유익한 고통,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통조차 부정한다. 예수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에 대해 조상의 죄나 자신의 죄 때문이냐는 바리새파의 저주론을 거부하고, 그 소경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요 9:2~3). ··· 이처럼 성서는 가계저주론과 다르게 고난은 모두 저주가 아니며, 믿음 안에서는 현재의 고난이 장차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고 가르친다. 

 

7. 연구결론 

 이윤호 목사와 메릴린 히키의 가계저주론의 신관, 기독론 및 구원론, 귀신신앙, 축사 기도문, 운명론의 문제점 등을 살펴 볼 때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위배됨이 현저하고 사이비성이 농후하므로 이들의 책을 읽거나 가르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금해야 한다. 

 

          

기독교 이단의 원조는 누구인가 ?

    오늘날 한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이단에 관한 정보는 현존하는 이단들의 정체성이다. 이단에 관해 역사적인 연구 없이 현상을 논하고 분석하며 비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라져간 이단들에 대한 연구 자료가 부실하고 기본 자료마저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신학교 도서관에도 이단 연구를 위한 자료가 부족한 편이다. 그렇다고 전문 도서관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연구, 보존하려는 사람도 없이 소중한 자료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을 원천적으로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뒹굴고 있는 자료나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특히 우리가 알아야 할 한국 이단사의 3대 산맥은 통일교의 문선명, 전도관의 박태선, 용문산의 나운몽일 것이다. 그중 두드러지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문제 종교로 급부상한 것이 통일교로 알려져 있지만, 전도관과 용문산도 알고 들어가면 마찬가지다. 이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기독교 신비주의 원류(源流)와 그 지류(支流)가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조사한 한국 기독교 이단만 하더라도 162개 집단이 넘고 있으며 총체적으로 종합 정리한 것만도 500여 개가 넘는다. 이들 이단 집단과 사상에 대해서 이해를 돕기 위해 논술하자면 지면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 국내 이단의 지류에 관해 이해를 돕기 전에 기본적으로 원류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일제 강점기에서 발생한 한국 기독교의 이단

 한국 기독교 이단은 일제 강점기에서 발생한 것이다. 시천교를 비롯해 증산도, 태극도 등 이른바 민족종교는 물론이고 통일교와 전도관 그리고 용문산도 마찬가지다. 통일교, 전도관, 용문산의 3대 이단들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배고프고 혼란스러웠던 삼천리 반도를 요란하고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집단들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훨씬 앞서 평양에 ‘김성도’라는 권사가 있었다. 그녀는 1925년 교단으로부터 책벌을 받아 출교된 자였다. 1882년에 태어나 17세 때 철산에 사는 27세 연상의 부자와 결혼하였으나, 손위 둘째 부인으로부터 모진 구박을 받으면서 시집살이를 하였고 결국에 병까지 들어 고생하였다. 그런 중에 어떤 전도사를 만나 교회를 찾아갔으나 자식까지 병들어 죽은 후에야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는 엄격한 유교 가정에 들어가 늙은 남편에게 목침으로 머리통을 얻어맞아 가면서 예수를 믿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 특출한 열심은 자기 집에 환자들을 불러 모아 먹이고 재우면서 무릎에 굳은살이 생기도록 기도하게 했다. 김 여인은 보통 때는 색시같이 말하지만 기도할 때면 남자처럼 아주 우렁찬 목소리였다고 한다. 입에 물 한 모금을 머금고 “성령 받아라”고 외치면서 청중을 향해 뿜어낼 때면 사람들은 그 물을 받아먹으려고 참새처럼 입을 벌렸다는 일화도 있다.

 

그녀는 특이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1922년 세계 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중에 입신을 경험하였고, 그의 손자가 부친으로부터 들은 말을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 여인은 입신 중에 예수님과 대화를 했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교회의 목사가 여성 문제로 고발되자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예수와의 대화를 통해 “죄악의 뿌리는 음란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고, “재림 주님이 육신을 쓴 인간으로 한반도에 온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예수와의 대화 내용이 길이 2m 폭 30㎝ 종이 12장 분량이었다고 한다.

 

신비주의 기독교 이단의 원조는 성주교 김성도 여인 

 통일교 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하는 「사보」(史報)라는 잡지에서 김 여인이 받았다는 12가지 중요 계시 중 5가지만을 간추려 본다. ①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다. ②재림 주님은 한국으로 오실 것인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게 아니라 육신을 쓴 인간으로 오실 것이다. ③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과일이 아니고, 타락은 사랑의 행위였다. 즉 타락은 사랑의 잘못으로 일어난다. ④남자와 여자는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결혼은 참된 결혼이 아니라 거짓 결혼이기 때문이다. ⑤주님은 새로운 혈통을 세우려고 오신다. 재림 주님을 영접하려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과 몸을 정결케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성생활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성도 여인은 추종자들에 의해 ‘새주님’으로 호칭되었고, 그의 자녀들은 ‘새주 새끼’로 지칭되었으며, 마침내 김성도 집단은 이용도의 예수교에 이어 성주교로 등장하게 된다. 김 여인은 기도 중에 받은 계시라며 “머지 않아 일본은 망한다”고 예언함으로써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다. 그러자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허호빈이라는 여인이 등장해 김성도의 추종자들을 평양으로 불러 모아 ‘복중교’를 만들어 예수 재림준비단을 발족시켰다. 휘하에 시범적으로 피갈음을 실천한 정득은이라는 여인도 있었다. 

 

이어 문선명(본명: 문용명)이 평양으로 가서 복중교 교인들을 포섭하였고 6·25전쟁 통에 월남해 정득은 여인을 만나 박태선과 함께 피갈음을 한다. 통일교 초기 중추 역할을 담당했던 교인들이 바로 김성도 여인의 가족과 후손들이며 성주교와 복중교 교인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정보는 정통 기독교사에는 없고 통일교 자료에서 많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뿐 아니라 통일교 교리는 김성도 여인이 기도 중에 입신하여 예수와의 대화를 통해서 받았다는 12가지 중 ‘죄악의 뿌리는 음란이다. 재림 주님은 육신을 쓴 인간으로 한반도에 온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더러 이 말을 듣고 “통일교 교리는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 원리’를 표절한 것이 아닌가”하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김성도 여인과 김백문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사실은 김백문의 스승이었던 백남주라는 목사가 이용도와 함께 ‘예수교’를 창설하였다. 백남주는 후에 김성도의 성주교를 총독부에 등록시켜 준 사람이다. 성주교 창립 예배 때에 사회를 보았던 사람이 바로 김백문으로서 백남주의 제자이다.

 

사이비 종교의 원조 백남주 목사

 백남주는 원산의 강신극이나 신학산과 이용도의 예수교 그리고 김성도의 성주교 등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핵심 인물이었다. 김성도 여인은 신비주의 기독교 이단의 원조라 한다면 사이비 종교의 원조는 백남주이다. 백남주는 1933년 평양신학을 25회로 졸업한 자요, 하나님의 계시라면서 본부인을 굶겨 죽게 한 자요, 처음으로 어린양의 천국 잔치를 한 자요, 자신의 1월 3일 생일을 예수님의 생일로 계시 받았다고 가르친 자요, 피갈음을 실시한 자요, 최초의 성인 잡지 「혈명」(血命)을 만든 자다. 

 

변종호 목사에 따르면 백남주는 성주교를 창설하면서 소집한 남녀 전도사들에게 짝을 지워 방방에 투숙시키고 “둘이 같이 잠을 자더라도 범간하지 않는 자라야 목사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혼음을 조장한 자이기도 하다. 이가 바로 문선명의 스승인 김백문의 스승이다. 백남주는 6·25전쟁 이후 백상조라는 이름으로 공주사범대학에서 기독교 문화사를 가르치다가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변종호 목사는 백남주를 가리켜 ‘흑괴’(黑怪)라고 지칭한다. 백남주는 1933년 1월 3일 “새생명의 길”이라는 교리를 선언하였다. 그 내용은 ①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②삼위일체를 부정하며 ③예수의 재림을 부정하고 ④천계에 대한 이설을 주장하며 ⑤예수의 가형설을 주장하고 ⑥원죄 내지 속죄 공로를 부정한다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한 원본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이단적 요소가 다분하다. 

 

기독교 신비주의와 사이비 종교의 원류

 일반적으로 신비주의란 신비적 존재와 개인과의 직접적인 교섭 내지 융합을 지칭해 쓰는 말이다. 「긍정과 부정 사이에」의 저자 스킬더(K. Schilder)는 불건전한 신비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첫째, 성령을 말씀에서 독립시켜 취급한다. 둘째, 천연을 등한히 여기고 은혜만을 강조한다. 셋째, 영적인 것보다 감각적인 것으로 종교적 사리를 취급하여 심미학적으로 그 가치를 판단한다. 이것이 신비주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 기독교 신비주의 원류로서 원조는 김성도 여인이요, 사이비 종교의 원조는 백남주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통일교의 창립 신도 중 김성도 여인의 추종자들이 주류를 이뤘고 문선명의 스승은 김백문이었으며, 문선명이나 전도관의 박태선에게 피갈음을 전한 자가 성주교의 김성도와 복중교의 대성심기도원장 정득은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용문산의 나운몽도 이스라엘수도원의 김백문과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증거가 포착되었다. 나운몽의 설교집이 김백문의 아호인 ‘초원’(初園)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돼 있다. 이렇듯 오늘날 한국 내 160여 개 기독교 이단들 대부분이 문선명, 박태선, 나운몽에 의해 파생된 것들이다. 

무엇이 이단인가?

    최근 들어 이단 종파가 말 그대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많은 영혼들이 거짓되고 사탄적인 이단에 현혹되고 있다. 생소한 신흥 이단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기존의 이단 종파들도 그 세력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이들의 신앙과 예배 의식을 접해 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무엇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비정통적인 종교와 예배의식에 몰려들게 하는 것일까?"

 

왜 이단이 생기는가?

이단의 창궐은 말세의 징조이다. 성경은 디모데전서 4장 1절에서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을 것이라고 이미 예언한 바 있다. 말세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헌신하기보다는 이를 거부하고 탈선하게 된다. 이런 '영적 탈선'의 원인을 데이브 브리이즈 목사는 '인간 본성이 어두움을 사랑함', '영적 미숙', '영적 전복', '지적 교만'의 네 가지 요인에서 찾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마음 속에 종교심을 갖고있다. 이 종교심은 수많은 거짓 종교들을 역사 속에 탄생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많은 종교들에는, 그것이 비록 각기 추구하는 신적 존재의 대상이 다르고 교리나 의식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종교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인생의 행복을 누리기 소원한다는 것이다. 성경적인 믿음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작정하시고 그 뜻대로 섭리하시는 우리의 인생에 만족하는 것이다. 올바른 믿음은 나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인간의 종교심은 정해진 운명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 인생의 운명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려고 한다. 이 조절 방법이 곧 종교 의식으로 표출된다. 이런 의식이 민간 신앙에서는 무당종교, 또는 기우제나 산신제 등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 종교 현상과 인간의 종교심이 어울려서 발생한 것이 신흥종교이고 이 신흥 종교의 교주들은 어김없이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신격화 되어 추종을 받는다.

 

이단은 무엇인가?

 '이단'이라고 하면 우리는 자신과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세계의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과 자신의 교회를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 비추어

 서 말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요일 4:1∼5)"

 

오직 예수만을 따르는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이다. 다시 말하자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속적 인본주의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이 바로 이단인 것이다. 세상 것에 대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 상당수의 교회는 이단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다음에 제시하는 이단의 보편적 특징들을 기준으로 자신과 자신의 교회를 점검해 보도록 하자.

 

성경 외 계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 이는 다른 무엇으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단 종파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후에도 어떤 수단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계시를 주셨고, 그것을 자신들이 기록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보다 더 권위있는 계시로 믿는다. 때로는 보통 사람들보다 '신의 영감을 특별히 더 받는' 지도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의 말은 결코 오류가 없고, 성경과 동일하거나 더 큰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단 교주들은 자기가 영 분별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방언이나 예언을 하는 것으로 위장 하고, 영서를 쓰는 등의 신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추종자들에게도 그러한 체험을 강요한다.

 

잘못된 구원의 기초

 구원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이 땅 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이단은 이러한 심리를 잘 이용한다. 구원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의 개념이 아닌,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결과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추종자들로부터 물질적 착취와 종교적 열심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은 누구나 죄인임을 말하면서도, 그 죄를 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이 수반되어야 함을 말하면서, 육체적 자학이나 금식 기도 등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허망하고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불확실한 소망

 이단은 세상에서는 누구도 결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끝까지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치료책을 제시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추종자들은 구원을 얻을 만한 선행도, 자선도, 기도도, 예배도 충분히 드리지 않았다는 일종의 두려움에 항상 사로잡혀 있다. 뭔가 늘 불안해 하는 사람은 '착취'하기가 쉬운 법이다. 이에 반해 성경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는 멋진 약속을 해주고 있다.

 

메시아임을 자칭

 이단 종파들은 그들의 인간 지도자의 인격과 말을 신격화 시키는 데 그 공통점이 있다. 메시아임을 자칭하는 이단 교주들은 자신의 지능과 인격의 힘을 사용해서 무지한 자들을 조종하고 통제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중재자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성령을 어떤 신령한 힘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그 힘을 자기가 준다고 믿게 한다. 혹은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교주 자신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게 확실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추종자들에게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다. 단체에서 봉사의 영역을 지정해 주고, 장래를 결정해 주며, 배우자가 누구라는 것까지 지목해 준다. 추종자들은 이들에게서 "내 기도를 믿으라"든가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는 식의 말을 듣는다. 이는 그들이 특별한 은사나 깊은 영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다는 일종의 엉터리 선전문구이다.

교리적 모호성

 이단은 성경에 교훈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띄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아무리 들어 봐도 앞뒤가 맞지 않고 혼동스럽다. 그들에게 더 이상 교리라는 용어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차라리 체계적인 주장을 갖추기 보다는 감정적인 흥분을 더 잘 이용한다. 영창의 사용, 높이 쳐든 손, 단조로운 멜로디 노래의 반복, 스타카토식의 몇 마디 말의 반복 등으로 이루어지는 예배 행위들은 반 이성적인 것으로, 인간의 감정 구조를 이용하기 위해 고안된 수법이다. 이러한 장치에 의해 추종자들은 일종의 평온함 또는 감정적 격양, 환희 등을 느끼게 되는데 이단 종파는 이것을 종교적 체험이라고 하나 사실은 정서적 쇼크에 불과하다. 복음의 메시지는 아주 분명하고 간단한 것이다. 교회가 이것을 올바로 선포한다면 최소한 교리적 모호성 때문에 이단에 빠져드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분명한 교리를 솔직히 선포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것이 이단 종파의 성장에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음은 자명하다. 명확성은 하나님의 복음인데 반해, 모호성은 사탄의 복음이다.

 

 "특별한 발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발견보다 더 위대한 발견은 이 우주 안에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단 종파들의 시초는 교주가 받았다는 개인적이고도 출처가 불분명한 종교적 체험이다. 이것이 자칭 '계시'이다. 사실, 어떤 주제에 대해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더 끌리는 사람은 없다. 이단은 이것을 이용한다. 특별한 영적 발견이 있다고 떠드는 종교적인 허탄한 이야기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기독교의 진리는 이와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기독교는 사사로운 개인들의 특별한 발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풍부한 증거자료 위에 근거한 것이다.

 

기독론에 있어서 혼란스러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이단은 예외없이 이 물음에 혼동을 준다. 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 혹은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또 인성을 부인한다. 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거나,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결국 복음의 참된 일꾼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첫 걸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그들의 정의가 어떤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성경의 일부분만을 강조한다

 이단 종파들은 그들의 신앙의 기초를 성경의 전체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거룩, 하나님의 왕국, 죽음, 은혜, 행위, 율법, 믿음 등에 관한 특정 구절 하나를 취해 그것을 하나님의 전 경륜과 대치하고자 한다. 우리는 성경의 한 인물의 말이나 전체 성경 중 한 권의 강조점에서 매력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말씀의 전체적인 메시지에 관심 기울이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님'을 이야기 하고 있다.

 

충성을 강요하는 조직체

 이단 종파는 추종자 하나하나를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옭아 매어서 일종의 노예로 전락시킨다. 이들은 추종자들을 자신의 조직에 완전히 뛰어들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규칙의 그물에 걸리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밀스런 조직, 개인적인 조직이 많은 것도 이단 종파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조직이 진리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더 조직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절대 진리는 자연스럽게 충성을 유발시킨다는 것을 명심하자.

 

경제적인 착취

 복음이 놀라운 메시지가 되는 것은 누구든지 '값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역사적으로 진정한 교회의 지도자는 돈 문제에 있어서 매우 청렴했다. 이단 종파의 지도자들은 전혀 다르다. 헌금은 특권과 은사와 능력을 얻는데 큰 효용이 있다고 떠벌인다. 그리고 조직에 많은 헌금을 하지 않는 벌로 지옥의 불이 임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없이 한다. 그들의 목적은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의도

 이단 교주들은 마치 피해망상증에 걸린 것처럼 자기와 다른 모든 견해를 비방한다. 자기들의 주장과 다른 타 종교 집단을 모두 부패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매도하며, 그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을 저주하고, 겁을 주며 협박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다른 집단에 대한 테러도 서슴치 않는다. 성경은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사람을 시험해 보라고 충고하고 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의해 교회는 심각한 진통을 겪게 된다.

 

사랑을 빙자한 타협과 혼합주의

 사랑은 교회의 독특한 속성이다. 그러나 사랑이 지나치다 보면 복음을 세속주의와 그릇된 이단의 논리에 타협시키는 정도까지 영적인 적응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혼합주의를 이단 종파는 반긴다. 교묘하게 기존의 성경 이야기를 먼저 꺼내 놓고 나중에 그들의 이단적인 신학적 결론을 그럴싸하게 혼합한다. 혼합주의를 허용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단지 이단 종파에 불과한 것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무비판적으로 성행되는 오늘, 진리 수호를 위해 세상과의 싸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I. 이단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교회

 한국교회는 오래 전부터 이단들로 인해 몸살을 앓기 시작했고,이제 그 심각성은 위험수위를 넘어가고 있다고 본다. 이미 그 실상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사교로부터 가정이 파괴되거나 교회가 추한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은 이제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예컨대, 1991년 5월에 아버지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다고 아들을 16개월씩 밀실에 감금해 두었던 사건을 모르는 자가 없다(1991년 5월 29일자 조선일보)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1990년 75차 총회시) 밤빌리아란 이단의 이야기이다. 그보다 우리는 1987년 8월 29일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잊지 못할 것이다.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불리에 소재하고 있는 주식회사 오대양 구내식당 천장 속에서 발견된 32구의 시체들로 온 세상을 놀라게 한 소위 '오대양사건'이다. 그런데 이 오대양 사건이 또 다시 살아나서 1991년 여름을 서늘하게 했다. 한국 역사에 기독교 이단문제로 이렇게 세상이 시끄러웠던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구원파와 오대양의 관계, 자살이냐 타살이냐, 세모와 5공과의 관계 등의 문제들이 밝혀지기를 숨을 조이며 지켜보았는데 별로 신통한 답을 얻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우리 정통교회 편에서 볼 때 얻은 것도 많았다고 본다. 어쨌든 이제 이단문제는 이단에 빠진 자들이나 그들의 가족만의 문제이기보다 기독교 자체의 문제가 되었고 심지어 사회적 국가적 문제로까지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마다 필자가 느끼는 안타까움이 하나 있다. 세상 사람에게는 정통교회와 이단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단이나 사교에 속한 자도 똑같이 교회란 이름이나 목사라는 이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기독교 자체의 문제로 오해하기 쉽고 또 그렇게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어느 때보다도 기독교인들의 조직적이고도 연합적인,그리고 지속적인 관심과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토의할 문제:범람하는 이단으로부터 어떻게 정통교회를 보호할 수 있는가? 

 

II. 왜 이단이 발생하는가?

 [한국교회는 이단의 천국인가]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도록 지난 1세기 동안 한국교회는 많은 이단을 배출시켰다. 왜 이렇게 많은 이단이 발생하는가? 물론 먹을 음식이 없으면 곰팡이가 필리 없고, 곡식이 없는데 쥐가 구멍을 뚫을 일이 없으며, 죽은 사람에겐 질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에 이단이 많은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교회의 부흥을 증명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단이 발생하는 부정적 요인은 위기이다. 그런 점에서 이단을 위기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집안 단속이 소홀할 때 도둑이 들어오고 몸이 약할 때 질병에 들기 쉬운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으로 전쟁의 위기를 맞고나면 사이비종교와 이단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실연당한 후에 이단에 빠지는 자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동네에 이단교회가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필자의 상담경험에 의하면 사회적 위기, 가정적 위기,경제적 위기,인간관계의 위기를 통해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쟁 후에 이단이 많으니 것도 같은 현상이다. 이것을 교회의 측면에서 그리고 교리적인 면과 윤리적인 면으로 세분하여 살펴보자. 왜냐하면 정통교회의 교리적 윤리적 약점이 이단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1. 교리적인 측면에서 본 이단의 온상 

 교리적인 면에서 볼 때 이단의 온상이 되는 토양은 두가지라고 본다. 첫째는 신비주의와 자유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의 시조 쉴라에르마흐에르(scheleiermacher)는 독일의 경건주의를 바탕으로 생겨났음을 보아 알 수 있다. 물론 신비를 부정하면 이성주의자가 되고, 신비만 인정하고 신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 신비주의자가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단은 신비적 접촉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신비주의자는 쉽게 이단에 빠질 수 있다. 한국교회에 이단이 많은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한국인들의 신비주의성 때문이다. 

 

또한 자유주의는 대부분 이단자들에게 교리적 근거를 제시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통일교도였던 김영운이 쓴 [통일신학]이란 책(서울,성화사 1981)을 보면 성경은 유오하다(p.40)는 것이요 그러기에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김씨는 성경이 유오하다는 5가지 증거를 제시할 때 교계의 모자유의 신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성경에는 모순이 많고, 원본의 내용을 알 길이 없고, 또한 신화와 비과학적 설명이 포함되어 있으며,전설도 많고,도덕적으로 무가치한 구절이 있으며, 예수님도 구약성서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았다.(pp.40-41)는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 신학자 하비 콕스가 통일교를 극찬한 것이나 연세대 신학과 교수였던 서남동 교수가 통일교를 옹호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2. 윤리적인 면에서 본 이단의 통로 

 교리적인 부패 못지 않게 윤리적인 부패는 이단의 온상이 된다.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망각할 때 우리의 양떼는 이리들에게 잡혀가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단에 대한 무관심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단의 천국으로 만든 것이다. 교회가 가져야할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놀기에 힘쓰는 아이는 공부를 잘할 수 없음과 같다. 교회가 선교적 관심을 잃게 될 때 교회는 강도의 굴혈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명령은 세상 속에 교회를 심으라는 것이다. 세상 속에 교회가 심어져 가고 있으나 반면에 교회 속에 세상이 심어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 속에도 물질주의와 교권주의의 담이 높아만 가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영광의 탑이 낮아만 가고 있는 증거가 된다. 수십 종이 넘는 비성경적인 헌금을 만들어 강조하는 것은 면죄부를 파는 중세교회와 다를 바가 없다. 더우기 오늘날 노회나 총회의 기능이 권력 싸움의 최대 관심이 선거에 있거나, 순수한 교리적 논쟁이 아닌 교권주의적으로 논쟁이나 일삼으려 한다면 한국교회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기독교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내적으로 교리적인 문제에 더 의존하고 있지만 외적으로는 세상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인정되느냐 인정되지 않느냐에 더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의 도덕성이 흐려질 때 불신자의 눈에는 정통교회와 이단이 다를 바가 없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변증가들마다 기독교가 참종교임을 증명하는데 교리적 변증외에 기독교의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웠던 것이다. 

 

토의할 문제:

1) 이단발생의 사회적,국가적,경제적 원인과 교회편에서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2) 이단발생의 교리적인 면과 윤리적인 면을 토의해 보자.

 

III. 이단이란 무엇인가?

한국에는 어림잡아 백여개의 이단이 있는데 그중에도 외국에서 들어온 소위 외래파는 열개 밖에 없다는 점과 인간 예수, 인간 하나님이 오십여명이나 된다는 점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아마 기도원이나 안방에 숨은 소수의 이단까지 합한다면 이백여개는 되리라고 본다. 이렇게 많은 이단에 대한 한국교회에 대책의 무엇인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이단이 무엇인지 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단에 대한 대책은 커녕 아직 이단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립부터 안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평신도들은 이단의 논쟁이란 마치 감정싸움으로 인한 또는 시기 질투에 의한 정죄 수단이라고 잘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예장(통합)에서의 김 기동씨의 귀신론과 조용기 목사에 대한 이단 시비 및 사이비 집단 규정 같은 것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물론 이단이 아닌 자를 감정적 싸움이나 시기 질투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한다면 이단으로 정죄된 자보다 이단으로 정죄한 자가 더 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먼저 이단이 무엇인지를 밝혀 알게 될 때 그것이 감정싸움인지 아닌지 알게될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이단이란 무엇인가?

이단이란 한마디로 교리적으로 잘못될 때 이단인 것이다.대부분 이단은 윤리적 부패를 수반하지만 비록 윤리적으로 선해도 교리적으로 잘못되면 이단임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안식교 같은 이단은 그들의 교리체계 내에서 선하게 살려고 하지만 교리적으로 잘못되었기에 이단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생기는 문제가 있는데 교리적으로 무엇이 잘못되면 이단이 되며 이단을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 신체를 예를 들어보면 눈이 멀었거나 팔을 잃어다고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명기관에 병이 들면 죽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신앙과 결정적인 교리가 한가지만 다를 때에도 이단으로 규정된다. 창조론,구원론,계시론,신론 중 단 하나만 잘못되어도 이단이 될 수 있다. 이것을 성경에서 들어보자.요한이서 1장1절에 보면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니]라고 했다. 이 말은 요한이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고,신성만 인정하는 도케티즘(가현설 주의자)에 대한 말이었다. 즉 예수님은 영으로 오셨고,영으로 죽으셨고,영으로 부활하셨다고 주장하여 예수님의 인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자들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이 이단을 규정하는 필 충분한 조건으로써의 말씀인줄 오해함으로 인성만 부정하지 않으면 이단이 아닌 줄 알고 있다. 물론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해도 이단이지만 그 반대로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거나 제한해도 이단임을 알아야 한다. 바로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나 신성을 제한하던 아리우스도 이단으로 정죄된 것과 같다. 

 

이것을 김기동씨의 경우에서 살펴보자. 김기동씨와 그와 같은 사상의 이초석씨는 동일한 주장을 하는데 자기들을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지 않는데 왜 이단이랴고 요한이서 1장 7절에 의해 따져 묻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기동씨는 신성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신이라고 하면 오히려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신의 생애가 아니고 사람의 생애요 예수님이 물 위를 걷고 기적을 행하는 것은 신이기 때문에 일으킨 것이 아니요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역사라는 것이다(제9기생 강의 테이프 29-2,19-2).그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성령을 자신보다 높혀서 성령에게 존칭어를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김기동,[성령을 알자] 베뢰아,1986,p.23). 사실 김기동씨의 경우에 예수님의 신성만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그토록 주장하는 인성도 역사적 기독교의 인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씨의 창조론에도, 삼위일체에도, 계시론에도, 성령론에도,마귀론에도 이단사상은 가득차 있지만 그가 주장하는 다른 모든 것들이 꼭 옳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신성 하나가 부정되는 것만으로도 이단이 되기에는 필요충분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많았던 이단 논쟁은 예수님의 양성(신성과 인성) 문제에서 발생했던 것과 섬세한 차이에도 이단 논쟁이 발생했던 점을 상기시켜 볼 때 교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유사하나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아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된때가 니케아회의(325년)요,그리스도의 인성을 제한하던 아볼리나리스가 이단으로 정죄된 때가 콘스탄티노플회의(381년)에서 이며, 그리스도의 양성이 완전히 독립되었으나 승천 때 합해진다는 네스트리오는 에베소회의 (431년)에서 정죄되었으며,칼케톤(451년)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양성을 부정하던 유디게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처럼 그 교리중 어느 하나라도 성경을 보면 역사적 기독교와 다를 때 이단이 된다. 

 

토의할 문제:

1) 교리의 이론성과 실제성이 무엇인가?

2) 이단은 정도에 따라 구별할 수 없는가?

3) 이단과 구원문제는 어떠한가?

4) 이단의 윤리성 문제를 토의해 보라.

5) 교회사 속의 이단 정죄와 현대의 이단 정죄에는 무슨 차이점이 있는가?

6) 기독교 중심의 신학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며 정통신학의 최대 약점이 되고 있는 종말론이나 마귀론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는가?

 

IV. 이단과 성경

 이단이 성경과 접촉점을 가지지 않았다면 기독교 이단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과 접촉점을 가지고 있고, 최소한 성경적 분위기를 가졌을 때 기독교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단이 보는 성경계시는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성경계시 외에 자기계시를 가진 이단이요, 둘째는 성경계시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다. 이단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단이란 성경 외에 자기계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통일교는 성경 외에[원리강론]이라는 자기계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때로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무서운 이단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 예를 들어보자. 보는 사람의 견해에 따라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을 전자에 속한 이단으로 볼 수 있다. 안식교의 경우 화이트여사의 대정투를 성경 외의 계시로 인정한다고 볼 수 있으나,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세분하자만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은 둘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실질적으로 자기계시를 가지고 있으나 표면적으로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것 같은 이단과 정말로 성경만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로 인정하지만 성경해석에서 그 차이점을 들어내는 이단은 구별되어야 한다. 비록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은 내면적으로 자기계시를 가지고 있더라도 기성교인에 대한 표면적 주장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이같은 구분을 하게 되는가. 그 이유는 실질적으로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든,표면적으로 인정하든 여기에 속한 이단이 더 무서운 이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일교에서 살펴보자. 통일교만큼 [원리강론]이란 자기계시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이단은 없다. 그런데 통일교마저도 성경만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통일교는 성경에 대해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얼굴은 친성경적인 얼굴이요, 다른 하나의 얼굴은 반성경적인 얼굴이다. 먼저 첫번째 얼굴을 보라.그들의 신조 두번째가 신구약성경을 경전으로 받든다고 했으며[통일교회소개](1982년 8월 13일 인쇄,8월 30일 발행 발행인 유광열, 발행처 성화사)라는 책자에서 문답으로 알아보는 통일교회라는 항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문 : 통일교회에서는 (원리강론)의 원리를 교리로 삼고 있는데 그 원리는 성경에 입각한 것인가? 

 

답 : 문선명 선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와 성경 가운데 이는 일관한 뜻을 가지고 종합해서 체계화시킨 것이 원리강론이다. 즉(원리강론)은 성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일종의 조직신학서라고 말함으로 성서의 권위를 높이고 있고, 또한 성서를 이해하기 위한 보조자료로 보는 것 같다. 조직신학 서적에 불과한 원리강론이 결코 원전인 성서보다 더 높이 평가될 수 없을 것이고 더우기 성서를 경전으로 본다는 말같이 들릴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이제 두 번째 얼굴을 살펴보자. 통일교 원리강론은 결코 조직신학이 아닌 새 계시, 새 성경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운씨가 쓴 [통일신학]이란 책(서울 성화사 1981)에서 보면 성경은 유오하기 때문에 (pp.40-41)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통일교의 소개]책자에서 살펴보면 똑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왜 통일교가 출현해야 하는가(p.11)에서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1.기독교 역사의 추이로 보아서, 2. 종교와 과학을 통일할 수 있는 진리의 필요성에 의해서.3. 성서예언에 따라 그렇다는 것이다. 이 점을 그들이 주장하는 원리강론에서 들어보자. 성서의 문자는 진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요, 진리자체가 아니요(p.139) ,그런 점에서 새진리가 나와야 하는데 성서는 진리 자체가 아니요 진리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이므로 말세에는 반드시 새진리가 나와야 한다(pp.140-141) 고 하며 이 교과서인 성경을 절대시 해서는 안된다는 (p.9).결국 원리강론은 성서에 대한 조직신학이라 하면서도 반대로 구약은 소생기의 것이요,신약은 장성기의 것이요,원리강론은 완성기의 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볼때 문제는 성경임을 알 수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 더 무서운 이단이다. 그러나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든 성경 외에 자기계시를 가졌든 논쟁의 촛점은 성경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비록 성경 외에 자기계시가 있는 이단이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최소최대한의 성경적 접촉점, 그것이 우리 논쟁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이단에 수십년씩 빠졌다가 돌아온 자들마다 정통교회의 이단 비판서적을 보고 이단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본인이 볼 때 이단에서 나온 자들은 이단에 대한 이해는 깊으나 비판의 기준은 강하다 이단에 대한 이해가 약하다. 이단자들이 가진 성경외의 자기계시나 교리기준을 이해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단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자들에게도 어려운데 일반 목회자나 하물며 평신도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것]은 모르더라도 [내것]은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내것]이 바로 성경이다. 잠언기자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는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4:12)라고 했다. 

 

토의할 문제:

1)이단자들의 성경해석과 정통교회의 성경해석에는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V. 왜 하나님은 이단을 내버려 두시는가?

이단에 대하여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왜 하나님은 이단을 내버려 두시는가? 왜 하나님께서 이단교회의 부흥을 보고만 계시는가?"라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단을 그냥두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하나님은 통일교의 재력을 꺽지 아니하시며, 한국의 100여개나 되는 이단의 왕국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단을 부정적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세에 대하여 바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가롯유다는, 아다나시우스에 대하여 아리우스는, 어거스틴에 대하여 펠라기우스는 부정적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교회사를 살펴볼 때 정통신학이 먼저 형성되고 이단 사설이 생겼던 경우보다 이단사설이 생김으로 정통신학 형성을 자극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라에는 구원의 역사와 심판의 역사를 동시에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악대로 극대화시키시고 선은 선대로 극대화시키시어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이루시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이단이 많다는 말은 한국교회에 교리적 윤리적 약점이 많다는 말이 된다. 이제 종말론은 기도원 신학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펄시콜레의 종말론이나 이장림의 종말론에 선량한 양떼들을 잃어서는 안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토의할 문제:

1)더 많은 이단 전문연구가의 필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2)해외에서의 이단들의 활동에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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