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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루터의 95개 조항 반박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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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09-28 22:43 조회2,0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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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루터의 95개 조항 반박문 全文

 

1.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 (마4,17)고 말씀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깊이 뉘우치는 것)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로서 이해할 수는 없다.

 

3.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일 그 같은 내적 회개가 육신의 정욕의 여러 가지 억제를 외부로 나오지 않게 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 고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한에는(참 내적 참회) 형벌이 계속할 것이다. 즉 우리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5. 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뜻(意志)을 가지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을 그가 사하는데 불과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그의 사죄하는 기능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될 때 사람 받았다는 죄는 확실히 그대로 잔재(殘在)한 것이다.

 

7.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행자인 사제의 권력에는 전적으로 복종하면서도 그 밖에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으신다.

 

8. 참회에 관한 교회 법은 산(生存)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임종에 처한 사람에게는 어떤 부담이든지 그 법(諸罰에 對한 敎會의 規定)에 의하여 부과되어져서는 안된다.

 

9. 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궁의 경우를 예외로 취급하는 교황의 법령에서 우리들에게 자비를 행하신다.

 

10. 임종에 처한 자에게 대하여 연옥 문제를 내세워서 종교상의 속죄를 보류하는 사제들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11. 종교상의 벌을 연옥의 벌로 변경시키는 가라 지는 확실히 감독들이 잠자는 동안에 숨겨진 것이라고 인다(마13,25).

 

 12. 종전의 예로서 종교상의 벌은 진실한 회오(悔悟)의 증거로서 사면(赦免)의 뒤(後)가 아니라 전에 부과되었던 것이다.

 

13. 임종에 처한 자는 죽음으로써 자유롭게 되며 교회 법령의 여러 요구에 대하여 이미 죽은 것이 되고 그 법령의 형벌에서 정당하게 자유 해방된다.

 

14.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사람의 심령의 불완전한 건강과 사랑은 반드시 큰 공포를 초래할 것인데 그 불완전성이 크면 클수록 더 큰 공포가 따를 것이다.

 

15. 이 불안 공포만으로도(다른 것은 말하지 않는다 치고라도) 연옥의 고통을 구성한다. 그 고통은 절망의 공포에 매우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16. 지옥과 연옥과 천국의 다른 점은 절망의 상태와 절망에 이르는 상태와 구원의 확실성과의 차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17. 연옥에 가 있는 영들은 공포의 감소와 사랑의 증가를 확실히 체험할 것이다.

 

18. 이상의 영들이 공적의 상태나 사랑의 증가 상태 밖(外)에 있다는 것은 이성으로나 성서적 근거로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19. 구원의 축복의 정확성과 확실성에 관하여서 우리들은 아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고할 것이로되 연옥에 있는 영들의 대부분을 위하여서는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20. 그런 고로 교황이 모든 죄의 완전한 사면을 말할 때 그는 단순히 모든 죄의 용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그 자신에 의해서 부과된 죄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21.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로써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해방되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선전하는 면죄 증 설교자들은 모두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형벌은 교회 법에 의하여 현세에서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23. 만일 누구에게든지 모든 형벌의 전적 사면이 허락된다면, 그러한 사면은 확실히 가장 완전한 사람 즉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24.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제한 되고 어마어마한 약속에 의하여 드러내놓은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가진 것과 같은 권위를 모든 감독과 특히 교구 목사는 자기의 감독 구나 교구 안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다.

 

26. 교황은 열쇠(천국)의 힘으로서가 아니고(사실 그와 같은 힘이란 것이 당치도 않지만), 대도(代禱)의 방법으로 영혼들에게 사죄를 허락한다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다.

 

27. 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28. 돈이 연보궤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利得)과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틀림 없다. 동시에 성직자의 대도(代禱)의 응답 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는 것이다.

 

29. 마치 성 세베린(St. Severin)과 파스칼리스(Paschalis)에 관한 전설에 있는 것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그 곳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어떠한지를 그 누가 알 것인가!

 

30. 누구든지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확신을 못 가지는데 하물며 남의 죄가 완전한 사면을 받았는지를 어떻게 밝힐 수 있을 것인가.

 

31. 진실로 회개한 사람이 드문 것 같이 면죄부를 진심으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32.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을 가르쳐서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되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특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34. 왜냐하면 이 사면의 은총은 인간에 의하여 정해진 예전적인 사죄 행위의 형벌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35. 연옥으로부터 영혼을 속량한다거나 고백장(즉 참회師-고백을 받는 신부-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허가)을 사는 사람은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자는 비 기독교적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36. 어떠한 그리스도인이고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면죄와 그의 관여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대로(제6논제 참조) 그것은 하나님의 사면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면죄부에 대한 관대한 생각과 참다운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사람들에게 권장한다는 것은 박식한 신학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40. 참다운 회개는 형벌을 달게 받는다. 그러나 면죄부에 대하여 관대한 것은 형벌을 등 한시하게 하고 슬퍼하게 하며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41. 사도 계승의 면죄(교황의 사면을 의미함)는 사람들이 결코 그것을 사람의 다른 선한 일(선행)보다 더 중요한 것 같이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설교하지 않으면 안된다.

 

42. 면죄부의 속죄를 자선사업과 비교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교화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스도인에게 가르쳐야 한다.

 

43.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부를 하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을 베푸는 일로써 성장하고 그 인간은 선을 행하는 사람보다 선하게 되지만, 면죄부로써는 인간이 보다 선하게 되지 못하고 다만 형벌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되는 것뿐이다.

 

45. 가난한 사람을 보고도 본 체 만 체 지나버리고(요3,17 참조) 면죄를 위해서 돈을 바치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자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풍부한 재산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자라면 자기 가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축할 의무가 있으며(딤 전5,8) 결코 면죄부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 면죄부를 사는 것은(사고 안 사는 것은) 자유로운 일이요 결코 그렇게 하라고 강요 되어진 것이 아니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8. 교황은 면죄부를 주는 일에 있어서 가져오는 돈보다도 오히려 자기를 위해 경오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필요로 하고 바란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부는 사람들이 만일 그것에게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유용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잃는 일이 있다면 매우 해로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 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설교자들의 행상 행위를 안다면, 자기 양의 가죽과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교회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 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1. 어떤 면죄부 설교자들에게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게 교황은 필요하다면 성 베드로의 교회당을 팔아서 까지라도 그 자신의 재산으로 갚아 주려고(당연하기는 하나)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 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면죄증서로 구원받을 것을 신뢰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비록 판매위탁자가, 아니, 교황 자신이 그 증서에 대해서 자기 영혼을 걸고 보증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53. 면죄부 설교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교회에서 아주 잠잠하여지도록 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다.

 

54. 설교하는 데 있어서 면죄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시간 또는 보다 더 긴 시간을 쓰는 것은 그 말씀에 대하여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만일 매우 적은 가치만을 지닌 면죄부가 하나의 방울과 행렬과 의식으로써 축하하게 된다면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복음은 백 개의 방울과 백의 행렬과 의식으로써 찬양해야 된다는 것이 교황의 의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56. 그것으로써 교황이 면죄를 주는 교회의 장보(藏寶)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충분히 표시되어지지도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57. 그것이 현세적인 보화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설교자(면죄증 판매인)들이 이와 같은 보화를 쉽사리 분여(分與)하지 않고 도리어 쌓아 두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58. 또 그 장보(藏寶)는 그리스도나 성자들의 공로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을교황의 고움과 전혀 독립 적으로 항상 속 사람에게는 은총을 주고 겉 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을 주기 때문이다.

 

59. 성 로렌티어스(St. Laurentius)는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시대 그 당시에 사용된 어의에 따라 말한 것이다.

 

60.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가 바로 그 장보(藏寶)라고 우리가 말해도 합당할 것이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 관리의 보유사건을 위해서는 교황의 권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명백한 일이기 때문이다.

 

62. 교회의 참 장보(藏寶)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의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63. 그렇지만 이 장보(藏寶)가 먼저 된 것을 나중된 것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증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마19,30 20,16 눅13,30).

 

 64. 그와 반대로 면죄증의 장보(藏寶)가 나중된 것을 먼저 된 것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애호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65. 그러므로 옛날에 있어서 복음의 장보(藏寶)는 돈 많은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었다.

 

66. 면죄부의 장보(藏寶)는 오늘날도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재산을 낚는 그물이다.

 

67. 면죄부 설교자들이 가장 큰 은총이라고 소리 높이 부르짖는 면죄부는 이익을 증가시키는 한에서는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68.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경건에 비하면 그것(면죄부)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69. 감독들과 교구 교사들은 사도계승의 면죄의 대리자들을 전적인 경의를 가지고 받아 들일 의무를 가지고 있다.

 

70. 그러나 일층 더 큰 의무는 눈을 활짝 뜨고 귀를 바짝 기울여서 교황의 위임한 것 대신에 자기들의 꿈을 설교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71. 사도계승의 면죄의 진리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는 추방과 저주를 받을지어다.

 

72. 그러나 다른 한편 면죄부 설교자들의 해롭고 뻔뻔스런 말에 대항하는 자는 복이 있을지어다.

 

73. 어떤 방법으로든지 면죄부 판매를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 교황이 책망할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74. 면죄부를 구실 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교황은 한층 더 심한 분노로 임할 것이다.

 

75. 교황의 면죄부에도 굉장한 능력이 있어 -불가능한 말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어머니를 능욕한 인간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 빠진 생각이다.

 

76. 그와 반대로 교황의 면죄부가 가장 작은 죄라 할지라도 그 죄책에 관하여서는 없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주장한다.

 

77. 만일 성 베드로가 교황이었다 할지라도 면죄 이상의 큰 은총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것은 성 베드로나 교황에 대한 모독이다.

 

78. 그와 반대로 현 교황이나 또는 다른 어떤 교황이라도 면죄보다 큰 은총 죽 고린도전서 12장에 가르치는 복음과 여러 가지 능력 또는 병 고치는 은사 등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들은 주장한다.

 

79. 교황은 팔로 장식된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80. 이와 같은 가르침이 사람들 가운데서 선포되는 것을 묵인하는 감독과 교구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81. 이와 같은 뻔뻔스런 면죄 설교로 비방과 또는 일반 세인의 의심 없는 날카로운 반대로부터 교황에 대한 존경을 수호하기란 제아무리 박식한 사람에게 있어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82. 예로서 만일 교황이 베드로 교회당에 소비될 썩어질 금전으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영혼을 구원한다고 할 것이면(이것도 구실에 불과하지만) 어찌하여 가장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 즉 거룩한 사랑과 영혼들의 최고의 필요를 위하여 연옥을 비우지 않는가?

 

83. 또한 이미 구속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나 연기제(年忌祭)를 계속하는가? 또 무엇 때문에 교황은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바친 기부금을 돌려주지 않으며 혹은 그것(기부금)의 취소를 허락하지 않는가?

 

84. 또한 돈 때문에 불 경건한 자와 하나님의 원수들로 하여금 그의 사랑을 받는 경건한 영혼을 구하도록 허락하면서, 그 경건한 영혼 자신의 필요를 위하여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구해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황의 어떤 새로운 신성함 인가?

 

85. 또한 참회에 관한 교회의 법규는 사실상 오랫동안 사용치 않았기 때문에 폐지되고 사문화되었는데 왜 아직 돈으로 인한 면죄부 부여를 통하여 구속해 내는 것 같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86. 또한 오늘날 제일 부자의 재산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신자의 돈으로 행하는 대신 차라리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87. 또한 완전한 참회로 충분한 사면과 속죄에 대한 편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엇을 사하려 하고 무슨 영적 은혜에 참여를 주려는가?

 

88. 또한 교황이 각 신자에게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 주는 것을 만일 하루에 백 번 준다고 한다면 교회는 얼마나 더 큰 축복을 얻게 되겠는가? (면죄부에는 그것으로써 한 번만 사죄된다는 것이 표시되어 있다)

 

89. 만일 교황이 면죄부로써 돈보다도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였다고 본다면, 무엇 때문에 그는 오래 전부터 주어 오던 증거나 면죄부를 정지하는가? 똑 같은 효력을 가졌음에 틀림없지 않는가?

 

90. 일반 세인이 열거한 반론에 대하여 떳떳한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다만 권력으로만 억압하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드는 일이요 또 그리스도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91. 그러므로 만일 면죄증이 교황의 정신과 의도에 따라 선전된다면, 이 모든 문제(Bedenken)는 쉽사리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그런 고로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평안도 없는데 평안, 평안하고 부르짖는 예언자들은 다 물러가라. (겔13,10 16 렘6,14 8,11 살전5,3)

 

 93. 그러나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 하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은 축복을 받을지어다. (사실) 십자가는 없는 것이다.

 

94. 그리스도인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하여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훈계 받아야 한다.

 

95.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 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행14,22).

 

 

 

 M.루터의 95개조항 반박문 全文 

 

1.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 (마4,17)고 말씀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깊이 뉘우치는 것)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로서 이해할 수는 없다. 

 

3.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일 그 같은 내적 회개가 육신의 정욕의 여러 가지 억제를 외부로 나오지 않게 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 고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한에는(참 내적 참회) 형벌이 계속할 것이다. 즉 우리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5. 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뜻(意志)을 가지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을 그가 사하는데 불과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그의 사죄하는 기능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될 때 사람 받았다는 죄는 확실히 그대로 잔재(殘在)한 것이다. 

 

7.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행자인 사제의 권력에는 전적으로 복종하면서도 그 밖에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으신다. 

 

8. 참회에 관한 교회 법은 산(生存)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임종에 처한 사람에게는 어떤 부담이든지 그 법(諸罰에 對한 敎會의 規定)에 의하여 부과되어져서는 안된다. 

 

9. 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궁의 경우를 예외로 취급하는 교황의 법령에서 우리들에게 자비를 행하신다. 

 

10. 임종에 처한 자에게 대하여 연옥 문제를 내세워서 종교상의 속죄를 보류하는 사제들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11. 종교상의 벌을 연옥의 벌로 변경시키는 가라 지는 확실히 감독들이 잠자는 동안에 숨겨진 것이라고 인다(마13,25). 

 

 12. 종전의 예로서 종교상의 벌은 진실한 회오(悔悟)의 증거로서 사면(赦免)의 뒤(後)가 아니라 전에 부과되었던 것이다. 

 

13. 임종에 처한 자는 죽음으로써 자유롭게 되며 교회 법령의 여러 요구에 대하여 이미 죽은 것이 되고 그 법령의 형벌에서 정당하게 자유 해방된다. 

 

14.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사람의 심령의 불완전한 건강과 사랑은 반드시 큰 공포를 초래할 것인데 그 불완전성이 크면 클수록 더 큰 공포가 따를 것이다. 

 

15. 이 불안 공포만으로도(다른 것은 말하지 않는다 치고라도) 연옥의 고통을 구성한다. 그 고통은 절망의 공포에 매우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16. 지옥과 연옥과 천국의 다른 점은 절망의 상태와 절망에 이르는 상태와 구원의 확실성과의 차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17. 연옥에 가 있는 영들은 공포의 감소와 사랑의 증가를 확실히 체험할 것이다. 

 

18. 이상의 영들이 공적의 상태나 사랑의 증가 상태 밖(外)에 있다는 것은 이성으로나 성서적 근거로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19. 구원의 축복의 정확성과 확실성에 관하여서 우리들은 아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고할 것이로되 연옥에 있는 영들의 대부분을 위하여서는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20. 그런 고로 교황이 모든 죄의 완전한 사면을 말할 때 그는 단순히 모든 죄의 용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그 자신에 의해서 부과된 죄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21.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로써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해방되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선전하는 면죄 증 설교자들은 모두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형벌은 교회 법에 의하여 현세에서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23. 만일 누구에게든지 모든 형벌의 전적 사면이 허락된다면, 그러한 사면은 확실히 가장 완전한 사람 즉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24.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제한 되고 어마어마한 약속에 의하여 드러내놓은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가진 것과 같은 권위를 모든 감독과 특히 교구 목사는 자기의 감독 구나 교구 안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다. 

 

26. 교황은 열쇠(천국)의 힘으로서가 아니고(사실 그와 같은 힘이란 것이 당치도 않지만), 대도(代禱)의 방법으로 영혼들에게 사죄를 허락한다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다. 

 

27. 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28. 돈이 연보궤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利得)과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틀림 없다. 동시에 성직자의 대도(代禱)의 응답 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는 것이다. 

 

29. 마치 성 세베린(St. Severin)과 파스칼리스(Paschalis)에 관한 전설에 있는 것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그 곳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어떠한지를 그 누가 알 것인가! 

 

30. 누구든지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확신을 못 가지는데 하물며 남의 죄가 완전한 사면을 받았는지를 어떻게 밝힐 수 있을 것인가. 

 

31. 진실로 회개한 사람이 드문 것 같이 면죄부를 진심으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32.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을 가르쳐서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되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특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34. 왜냐하면 이 사면의 은총은 인간에 의하여 정해진 예전적인 사죄 행위의 형벌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35. 연옥으로부터 영혼을 속량한다거나 고백장(즉 참회師-고백을 받는 신부-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허가)을 사는 사람은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자는 비 기독교적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36. 어떠한 그리스도인이고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면죄와 그의 관여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대로(제6논제 참조) 그것은 하나님의 사면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면죄부에 대한 관대한 생각과 참다운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사람들에게 권장한다는 것은 박식한 신학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40. 참다운 회개는 형벌을 달게 받는다. 그러나 면죄부에 대하여 관대한 것은 형벌을 등 한시하게 하고 슬퍼하게 하며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41. 사도 계승의 면죄(교황의 사면을 의미함)는 사람들이 결코 그것을 사람의 다른 선한 일(선행)보다 더 중요한 것 같이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설교하지 않으면 안된다. 

 

42. 면죄부의 속죄를 자선사업과 비교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교화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스도인에게 가르쳐야 한다. 

 

43.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부를 하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을 베푸는 일로써 성장하고 그 인간은 선을 행하는 사람보다 선하게 되지만, 면죄부로써는 인간이 보다 선하게 되지 못하고 다만 형벌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되는 것뿐이다. 

 

45. 가난한 사람을 보고도 본 체 만 체 지나버리고(요3,17 참조) 면죄를 위해서 돈을 바치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자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풍부한 재산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자라면 자기 가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축할 의무가 있으며(딤 전5,8) 결코 면죄부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 면죄부를 사는 것은(사고 안 사는 것은) 자유로운 일이요 결코 그렇게 하라고 강요 되어진 것이 아니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8. 교황은 면죄부를 주는 일에 있어서 가져오는 돈보다도 오히려 자기를 위해 경오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필요로 하고 바란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부는 사람들이 만일 그것에게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유용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잃는 일이 있다면 매우 해로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 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설교자들의 행상 행위를 안다면, 자기 양의 가죽과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교회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 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1. 어떤 면죄부 설교자들에게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게 교황은 필요하다면 성 베드로의 교회당을 팔아서 까지라도 그 자신의 재산으로 갚아 주려고(당연하기는 하나)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 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면죄증서로 구원받을 것을 신뢰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비록 판매위탁자가, 아니, 교황 자신이 그 증서에 대해서 자기 영혼을 걸고 보증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53. 면죄부 설교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교회에서 아주 잠잠하여지도록 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다. 

 

54. 설교하는 데 있어서 면죄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시간 또는 보다 더 긴 시간을 쓰는 것은 그 말씀에 대하여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만일 매우 적은 가치만을 지닌 면죄부가 하나의 방울과 행렬과 의식으로써 축하하게 된다면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복음은 백 개의 방울과 백의 행렬과 의식으로써 찬양해야 된다는 것이 교황의 의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56. 그것으로써 교황이 면죄를 주는 교회의 장보(藏寶)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충분히 표시되어지지도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57. 그것이 현세적인 보화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설교자(면죄증 판매인)들이 이와 같은 보화를 쉽사리 분여(分與)하지 않고 도리어 쌓아 두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58. 또 그 장보(藏寶)는 그리스도나 성자들의 공로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을교황의 고움과 전혀 독립 적으로 항상 속 사람에게는 은총을 주고 겉 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을 주기 때문이다. 

 

59. 성 로렌티어스(St. Laurentius)는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시대 그 당시에 사용된 어의에 따라 말한 것이다. 

 

60.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가 바로 그 장보(藏寶)라고 우리가 말해도 합당할 것이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 관리의 보유사건을 위해서는 교황의 권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명백한 일이기 때문이다. 

 

62. 교회의 참 장보(藏寶)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의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63. 그렇지만 이 장보(藏寶)가 먼저 된 것을 나중된 것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증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마19,30 20,16 눅13,30). 

 

 64. 그와 반대로 면죄증의 장보(藏寶)가 나중된 것을 먼저 된 것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애호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65. 그러므로 옛날에 있어서 복음의 장보(藏寶)는 돈 많은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었다. 

 

66. 면죄부의 장보(藏寶)는 오늘날도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재산을 낚는 그물이다. 

 

67. 면죄부 설교자들이 가장 큰 은총이라고 소리 높이 부르짖는 면죄부는 이익을 증가시키는 한에서는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68.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경건에 비하면 그것(면죄부)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69. 감독들과 교구 교사들은 사도계승의 면죄의 대리자들을 전적인 경의를 가지고 받아 들일 의무를 가지고 있다. 

 

70. 그러나 일층 더 큰 의무는 눈을 활짝 뜨고 귀를 바짝 기울여서 교황의 위임한 것 대신에 자기들의 꿈을 설교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71. 사도계승의 면죄의 진리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는 추방과 저주를 받을지어다. 

 

72. 그러나 다른 한편 면죄부 설교자들의 해롭고 뻔뻔스런 말에 대항하는 자는 복이 있을지어다. 

 

73. 어떤 방법으로든지 면죄부 판매를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 교황이 책망할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74. 면죄부를 구실 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교황은 한층 더 심한 분노로 임할 것이다. 

 

75. 교황의 면죄부에도 굉장한 능력이 있어 -불가능한 말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어머니를 능욕한 인간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 빠진 생각이다. 

 

76. 그와 반대로 교황의 면죄부가 가장 작은 죄라 할지라도 그 죄책에 관하여서는 없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주장한다. 

 

77. 만일 성 베드로가 교황이었다 할지라도 면죄 이상의 큰 은총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것은 성 베드로나 교황에 대한 모독이다. 

 

78. 그와 반대로 현 교황이나 또는 다른 어떤 교황이라도 면죄보다 큰 은총 죽 고린도전서 12장에 가르치는 복음과 여러 가지 능력 또는 병 고치는 은사 등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들은 주장한다. 

 

79. 교황은 팔로 장식된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80. 이와 같은 가르침이 사람들 가운데서 선포되는 것을 묵인하는 감독과 교구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81. 이와 같은 뻔뻔스런 면죄 설교로 비방과 또는 일반 세인의 의심 없는 날카로운 반대로부터 교황에 대한 존경을 수호하기란 제아무리 박식한 사람에게 있어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82. 예로서 만일 교황이 베드로 교회당에 소비될 썩어질 금전으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영혼을 구원한다고 할 것이면(이것도 구실에 불과하지만) 어찌하여 가장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 즉 거룩한 사랑과 영혼들의 최고의 필요를 위하여 연옥을 비우지 않는가? 

 

83. 또한 이미 구속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나 연기제(年忌祭)를 계속하는가? 또 무엇 때문에 교황은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바친 기부금을 돌려주지 않으며 혹은 그것(기부금)의 취소를 허락하지 않는가? 

 

84. 또한 돈 때문에 불 경건한 자와 하나님의 원수들로 하여금 그의 사랑을 받는 경건한 영혼을 구하도록 허락하면서, 그 경건한 영혼 자신의 필요를 위하여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구해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황의 어떤 새로운 신성함 인가? 

 

85. 또한 참회에 관한 교회의 법규는 사실상 오랫동안 사용치 않았기 때문에 폐지되고 사문화되었는데 왜 아직 돈으로 인한 면죄부 부여를 통하여 구속해 내는 것 같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86. 또한 오늘날 제일 부자의 재산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신자의 돈으로 행하는 대신 차라리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87. 또한 완전한 참회로 충분한 사면과 속죄에 대한 편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엇을 사하려 하고 무슨 영적 은혜에 참여를 주려는가? 

 

88. 또한 교황이 각 신자에게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 주는 것을 만일 하루에 백 번 준다고 한다면 교회는 얼마나 더 큰 축복을 얻게 되겠는가? (면죄부에는 그것으로써 한 번만 사죄된다는 것이 표시되어 있다) 

 

89. 만일 교황이 면죄부로써 돈보다도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였다고 본다면, 무엇 때문에 그는 오래 전부터 주어 오던 증거나 면죄부를 정지하는가? 똑 같은 효력을 가졌음에 틀림없지 않는가? 

 

90. 일반 세인이 열거한 반론에 대하여 떳떳한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다만 권력으로만 억압하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드는 일이요 또 그리스도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91. 그러므로 만일 면죄증이 교황의 정신과 의도에 따라 선전된다면, 이 모든 문제(Bedenken)는 쉽사리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그런 고로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평안도 없는데 평안, 평안하고 부르짖는 예언자들은 다 물러가라. (겔13,10 16 렘6,14 8,11 살전5,3) 

 

 93. 그러나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 하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은 축복을 받을지어다. (사실) 십자가는 없는 것이다. 

 

94. 그리스도인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하여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훈계 받아야 한다. 

 

95.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 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행14,22).  

 

 

 

 

마틴 루터의 95개조항 반박문 전문, 1517. 10. 31. 

 

 1.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신자들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2. 이 말씀이 고해성사, 즉 사제에 의해 집도되는 고백과 속죄로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3. 하지만 이것이 단지 내적 회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내적 회개는 육신의 다양한 외적 수행을 수반하지 않는 한 무가치한 것이다. 

 

4. 죄에 대한 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여도 즉 참된 내적 회개를 하여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5. 교황은 자기의 권위나 교회법의 권위에 부여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벌도 가감할 수 없다. 

 

6. 교황은 하나님이 용서하셨음을 선언하신 것과 자신의 판결에 위임된 죄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죄도 용서할 수 없다. 교황의 권한을 넘는 죄는 교황의 용서로 사하여지지 않는다. 

 

7. 하나님은 인간이 겸손해져서 그의 대목(代牧)인 사제들에게 복종치 않는 한, 누구의 죄도 사하지 아니하신다. 

 

8. 속죄의 법은 단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다. 그 법에 따라, 죽은 자의 죄가 사하여질 수는 없다. 

 

9. 그러므로 교황이 그의 교령(敎領)에서 언제나 죽음과 필요의 항목을 제외한다면 교황을 통해 역사하는 성령은 우리에게 자애롭다. 

 

10. 죽어서 가는 연옥을 교회법의 벌로 삼는 사제들은 무식하고 악한 이들이다. 

 

11. 교회법의 벌을 연옥의 벌로 바꾸는 가라지가 감독들이 자는 동안에 분명히 뿌려 졌다(마13:25). 

 

 12. 이전에 교회법의 벌은 진정한 회개의 시금석으로서 사면 후가 아니라 전에 가해졌다. 

 

13. 죽은 사람은 죽음으로써 모든 형벌로부터 벗어나고, 교회법에 관한 한 이미 죽었으며 그로부터 해방될 권리를 갖고 있다. 

 

14. 죽어가는 사람에 있어서 불완전한 경건이나 사랑은 반드시 커다란 불안을 수반한다.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두려움은 더욱 크다. 

 

15. 이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가 바로 절망의 공포이므로 연옥의 형벌로써 충분한 것이다. 

 

16.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의 차이는 절망, 두려움 그리고 구원의 확신 간의 차이와 같다. 

 

17.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는 두려움이 감소하여야 하며, 사랑은 증가하여야 할 것 같다. 

 

18. 또 연옥에 있는 영혼이 공과(功過)의 영역 밖에 있는지, 즉 사랑을 더 입을 수 없는지의 여부는 이성으로도, 성경을 통해서도 입증되지 않는 것 같다. 

 

19. 또 연옥에 있는 영혼들 중 모두는 아니라 해도 얼마는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지의 여부도 입증되지 않을 것 같다. 

 

20. 그러므로 교황이 “모든 형벌의 무조건적인 사면”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이는 실제로 모든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할 수 있는 형벌에 국한되는 것이다. 

 

21. 그러므로 인간이 교황의 면죄부를 통해 모든 형벌을 면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면죄부 설교자들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22. 사실상 교황이 교회법에 따라 이 세상에서 치러야 할 벌을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사하여 줄 수는 없는 것이다. 

 

23. 모든 벌의 사함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가장 완전한, 즉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될 뿐일 것이다.

 

24.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로부터 구원이라는 어마어마하고도 무분별한 약속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 대하여 갖는 일반적인 영향력은 주교나 사제가 자신의 교구에 대해 갖는 특별한 영향력에 상응하는 것이다. 

 

26. 교황은 실제 자신이 갖지 못한 결정적인 열쇠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보를 통해서만 연옥에 있는 영혼의 죄를 사할 수 있을 뿐이다. 

 

27. 돈이 연보궤에 짤랑하고 떨어지는 순간에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풀려난다고 말하는 이들은 단지 인간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28. 돈이 연보궤에 짤랑하고 떨어지면 욕심과 탐욕도 분명히 증가한다. 그리고 교회의 중보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29. 성 세베리누스와 성 파샬에 관한 전설에서처럼,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는지의 여부를 누가 알겠는가?

 

30. 누구도 자신의 회개의 완전성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더군다나 속죄의 완전성 여부는 더욱더 확신할 수 없다. 

 

31. 실제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실제로 회개를 하는 사람만큼이나 드물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32. 면죄부를 사므로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는 이들은 그들의 교사들과 더불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을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특별히 경계하여야 한다. 

 

34. 왜냐하면, 그 사면의 은혜는 오로지 인간이 설정한 성례의식에 대한 벌에만 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5. 연옥으로부터 영혼을 속량하거나 고해신부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허가증을 사려는 이들에게는 회개가 필요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비기독교적 교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36.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없이도 죄와 벌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받을 수 있다. 

 

37.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살았든 죽었든 모든 그리스도의 축복과 교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축복과 용서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언명했듯이(제6조항 참조), 이는 하나님의 용서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39. 아무리 박식한 신학자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면죄부와 동시에 진정한 회개의 필요성을 설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40. 진정으로 회개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죄 값을 달게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면죄부는 벌을 가볍게 하려는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벌 받기 싫어하게 하는 것이다 - 적어도 이는 벌받기를 싫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41. 교황의 면죄는 그것이 다른 사람의 행위들보다 더 낫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42. 교황은 면죄부를 사는 일이 자선사업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43.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꾸어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선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44. 사랑은 행함으로써 더욱 커지고, 인간은 이를 통해 더욱 선해지나, 면죄부를 통해서는 인간이 선해질 수 없고 단지 벌을 면할 뿐이기 때문이다. 

 

45. 궁핍한 사람을 보고도 이를 지나치며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46. 그리스도인들은 생계의 충분한 여유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충분히 저축하여야 하며, 결코 이를 면죄부에 낭비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7. 그리스도인들은 면죄부를 사는 것이 자유선택의 문제이지, 명령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48.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이 면죄해 주는데 있어서는 돈보다 경건한 기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9.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의 면죄부가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때에만 유용한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이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망각한다면 매우 해로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50. 교황이 면죄부 교사들의 진상을 안다면, 그는 자기 양의 뼈와 살 그리고 그 가죽으로 성 베드로 사원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원이 재로 화하기를 원했을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51. 교황은 면죄부 판매자들로부터 돈을 갈취당한 많은 이들에게 성 베드로 사원을 팔아서라도 돈을 나누어 주기를 원할 것이며 또 원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52. 비록 면죄부 담당 주교나 교황이라 할지라도 자기 영혼의 안전을 위해 면죄부에 의한 구원을 믿는 것은 헛된 일이다. 

 

53. 면죄부 판매를 위해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 전파를 금하는 교황은 그리스도의 적이다

 

54.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면죄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는 것이다. 

 

55. 극히 무의미한 것인 면죄부가 한 단어, 한 문장, 한 구문으로 표현된다면, 매우 중요한 것인 복음은 백 단어, 백 문장, 백 개의 구문으로 설교되어야 한다.

 

56. 교황이 면죄부를 파는 교회의 보물은 그리스도의 사람들 사이에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57. 면죄부가 이 세상의 보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많은 면죄부 판매자들이 이를 마음대로 나누어 주기보다는 이를 긁어모을 뿐이기 때문이다. 

 

58. 이는 또 그리스도와 성자들의 공로도 아니다. 왜냐하면 교황 없이도 그리스도의 공로는 속사람에게는 은혜를, 겉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지옥을 주기 때문이다.

 

59. 성 로렌스는 교회의 가난한 자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는 그 당시 말의 어법에 따른 것이다. 

 

60.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가 바로 보물이라는 우리의 말은 충분히 숙고한 결과이다.  

 

61. 왜냐하면 분명한 것은 교황의 권한이 자신에게 부여된 벌과 재판을 면제해 주기에 충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62. 교회의 진정한 보물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증언인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63. 하지만 이 보물은 가장 싫게 여겨지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는 처음된 자를 나중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마20:16). 

 

 64. 한편, 면죄부의 보물은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나중된 자를 처음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65. 그러므로 복음의 보물은 이전엔 사람을 위해 부를 낚았던 그물이었다. 

 

66. 면죄부의 보물은 지금 부를 위해 사람을 낚고 있는 그물이다. 

 

67. 선동가들이 최고의 은혜라고 주장하는 면죄부는 실제로는 면죄부가 이익을 증진시킬 때에만 그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68. 하지만 이는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신앙이 비교해 볼 때 가장 무의미한 은혜에 불과하다. 

 

69. 감독과 사제들은 교황 면죄부 사절들을 기꺼이 그리고 매우 경건하게 맞아들여야 한다. 

 

70. 하지만 그들은 이 사절들이 교황으로부터 위임받은 것 대신에 자신들의 생각을 설교하지 않도록 보다 더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71. 교황의 면죄부에 관한 진리를 거스리는 이는 파문되어야 한다. 

 

72. 하지만, 면죄부 사절의 욕심과 방종을 경계하는 이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73. 교황은 여하튼 면죄부 판매에 해를 끼치는 이들을 혹독하게 꾸짖을 수 있다. 

 

74. 하지만, 교황은 이보다는 더욱더 거룩한 사랑과 진리에 해를 도모하기위한 구실로 면죄부를 사용하는 이들을 꾸짖기를 원한다. 

 

75. 면죄부를 과대평가하여 인간이 아무리 못할 짓을 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어머니를 범했다 할지라도 면죄부가 그 죄를 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76. 우리의 주장은 정반대로 교황의 면죄부는 아무리 하찮은 죄라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77. 성 베드로가 지금의 교황이라 할지라도 더 큰 은혜를 베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을 동시에 모독하는 것이다. 

 

78. 우리의 주장은 반대로 지금의 교황, 또는 어떤 교황이라 할지라도 고린도전서 12장28절에 씌어진 대로 복음과 영력 그리고 치유의 은사 등 훨씬 더 많은 은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79. 교황의 성의에 그려진 십자가와 면죄부 사절이 세운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80. 그러한 말을 퍼뜨리는 감독, 사제, 그리고 신학자들은 다음에 답해야할 것이다. 

 

81. 이 무분별한 면죄부의 강조 때문에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도 세인들의 중상 또는 날카로운 질문으로부터 교황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82. “교황이 교회를 세우는 데 드는 하찮은 돈을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한다고 한다면, 그는 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절박한 필요를 들어주거나, 또는 거룩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연옥을 완전히 비우지 않는가? 후자는 가장 사소한 것이 아닌가?” 

 

83. 또 “이미 구속받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부당한 것인데, 왜 죽은 자의 장례미사나기년미사는 계속되는가? 또, 왜 교황은 그러한 이유에서 바쳐진 기부금을 돌려주지도 않고, 이의 취소를 허락하지도 않는가?” 

 

84. 또, “돈 때문에 불경한 자와 적들로 하여금 연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경건한 영혼을 살 수 있도록 하면서, 오히려 경건하고 사랑스런 영혼을 위해서는, 즉 순수한 사랑의 목적으로는 이를 행치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신앙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85. 또, “이미 오래 전에 취소되었고, 사실상 사문화되었으며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회죄총칙(悔罪總則)이 왜 면죄부판매를 통해 아직도 살아 있고 강력한 힘을 갖는 것처럼 통용되고 있는가?” 

 

86. 또, “오늘날 최고의 부자였던 크라수스보다도 훨씬 부자인 교황이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돈으로 이 성 베드로사원을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87. 또, “이미 전적인 회개를 통해 완전한 구속과 축복을 받은 이들에게 교황은 또 무엇을 용서하고 무엇을 축복하겠다는 것인가?” 

 

88. 또, “교황이 지금 하루에 한 번 모든 신자들에게 베풀고 있는 사면과 축복을 하루에 백 번을 한다고 하여 얼마나 더 큰 축복이 교회에 임하겠는가?” 

 

89. “교황이 면죄부를 통해 돈보다는 영혼의 구원을 구하고 있다면, 왜 그는 지금까지 행해 온 똑같은 효력을 갖는 사면과 특사를 중지하는가?” 

 

90. 세인들의 날카로운 논박을 오직 힘으로만 억누르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소치 않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적들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91. 그러므로, 면죄부가 교황의 마땅한 뜻과 생각에 따라 설교된 것이라면, 이 모

 든 의문들은 이미 해결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 없어져야 했을 것이다. 

 

92.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향하여 평안하지도 않은데 “평안하라, 평안하라”하는 모든 선지자들은 다 물러가야 한다(겔13:10, 16; 렘6:14; 8:11; 살전5:3). 

 

 93.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십자가가 없는 곳에서 “십자가, 십자가”를 외치는 모든 선지자들에게 축복이 있을 것이다.

 

94. 그리스도인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형벌, 죽음, 그리고 지옥을 거치면서 부지런히 따르도록 교훈되어야 한다. 

 

95.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평화에 대한 잘못된 확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많은 고난을 통해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한다(행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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